굳은 것이 다시 물러지려면
짧은 답
몸이 「굳었다」는 말은 꼭 상했다는 뜻일까요? 삽질하면 손바닥이 두꺼워지듯, 몸은 눌리는 곳을 눌리는 만큼 바꿔 놓습니다. 물이 줄어 뻑뻑해진 것과 콜라겐이 쌓여 자리 잡은 것은 걸리는 시간이 다릅니다 — 지금 어느 쪽이 앞에 나와 있는지를 봅니다. 붓고 열이 나거나 쉬어도 점점 심해지면 검사가 먼저입니다.
목차
삽질을 며칠 하면 손바닥에서 자루를 쥐던 곳이 두꺼워집니다. 몇 주 지나면 제법 단단해지고, 일을 그만두면 몇 달에 걸쳐 다시 얇아집니다.
이걸 두고 손이 망가졌다고는 하지 않습니다. 눌리는 곳을 눌리는 만큼 바꿔 놓은 것뿐입니다.
몸 안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다만 안쪽 일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 굳었다는 말을 들으면 대개 상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십니다.
눌리는 곳은 원래 성질이 바뀝니다
힘줄은 대개 당겨지는 힘을 받습니다. 그런데 힘줄이 지나가는 길에는 당겨지기만 하지 않는 데가 있습니다. 뼈 위를 감아 도는 곳, 그리고 뼈에 붙는 곳입니다. 여기에는 당기는 힘 말고 누르는 힘이 걸립니다.
그곳의 힘줄은 다른 데와 다르게 자랍니다. 섬유연골이라고 부르는 조직으로 바뀝니다. 이름 그대로 힘줄과 연골의 성질을 함께 가진 조직인데, 물을 끌어당기는 성분을 만들어 그 물로 누르는 힘을 받아 냅니다. 누르는 곳에서만 그렇게 됩니다.
어딘가 잘못돼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곳이 원래 그렇게 버티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변화는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습니다. 그곳에 걸리는 힘이 달라지면 조직도 거기에 맞춰 천천히 달라집니다. 앞서 손바닥이 그랬듯이 시간이 걸립니다.
트인 곳에서 생기면 아무 일도 아닙니다
넓게 트인 곳에서는 조직이 조금 두꺼워져도 옆으로 비켜설 여유가 있습니다. 두꺼워지고 끝납니다.
그런데 몸에는 뼈와 인대가 함께 만든 좁은 통로가 여럿 있고, 힘줄이 그 안을 미끄러져 지나갑니다. 여기서는 같은 만큼 두꺼워져도 비켜설 자리가 없습니다. 통로와 그 안을 지나는 것의 굵기가 어긋나고, 지날 때마다 걸립니다.
얼마나 변했느냐만으로는 갈리지 않습니다. 그 조직이 어디에 놓여 있느냐가 함께 정합니다. 같은 변화가 어떤 곳에서는 오래 아무 일도 아니고, 어떤 곳에서는 이르게 불편이 되기도 합니다.
한 사람의 몸 안에서도 그렇습니다. 비슷한 힘을 받는 곳이 여럿인데 그중 한 곳만 말썽입니다. 그 한 곳이 유난히 약해서가 아니라, 그곳에 여유가 없어서입니다.
먼저 치우고, 채우고, 쌓습니다
상한 곳이 다시 붙는 과정은 한 덩어리가 아닙니다. 차례가 있습니다.
처음 며칠은 치웁니다. 못 쓰게 된 조각을 걷어내고, 일할 세포를 불러 모읍니다.
다음은 채웁니다. 새 세포가 늘고 새 혈관이 자랍니다. 몇 주가 걸립니다. 많이 상했을수록 더 걸립니다.
채우면서 함께 하는 일이 둘 있습니다. 새 세포의 일부가 벌어진 곳을 가운데로 당겨 오므리고, 그 사이를 콜라겐으로 메워 갑니다. 일이 끝나 갈 무렵이면 일할 만큼 일한 세포들이 스스로 물러납니다(세포자멸사).
여기까지가 수리입니다. 그런데 수리를 마친 곳은 당겨진 만큼 좁고, 쌓인 콜라겐만큼 뻣뻣합니다.
물이 하는 일과 콜라겐이 하는 일은 다릅니다
그래서 같은 곳이 굳어 있어도 무엇이 주도하고 있느냐가 다릅니다.
조직의 물기(수화)와 맞닿은 면의 미끄러짐(계면 윤활)이 주도하는 쪽이 있습니다. 조직 사이에 있어야 할 물이 줄었거나, 서로 스치는 면의 형편이 달라진 것입니다. 이쪽은 아직 여지가 있습니다. 물은 다시 들어올 수 있고, 스치는 면의 형편도 다시 달라질 수 있습니다.
쌓인 콜라겐이 주도하는 쪽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거기에 놓여 자리를 잡은 것이라, 며칠이나 몇 주 사이에 물러지지 않습니다. 이쪽은 걸리는 시간이 아예 다릅니다.
오래됐다고 앞쪽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오래 굳어 있던 곳은 다 쌓여 버렸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래 굳어 있던 곳에도 물이 하는 몫과 스치는 면이 하는 몫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쪽은 그쪽대로 움직입니다. 반대로 다친 지 얼마 안 된 곳에도 이미 쌓이기 시작한 몫이 있습니다. 한 곳에 두 가지가 함께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두 가지는 서로 붙어 움직입니다. 앞쪽이 오래 나빠져 있으면 뒤쪽이 더 쌓이기 쉽고, 뒤쪽이 자리를 잡으면 앞쪽도 예전 같기 어려워집니다.
그러니 되돌아오느냐 마느냐로 가를 일이 아닙니다. 물어야 할 것은 지금 이곳에서 어느 쪽이 앞에 나와 있는가입니다. 앞에 나와 있는 쪽이 바뀌면, 같은 곳이라도 겪는 것이 달라집니다.
다만 굳었다고 느끼시는 것이 모두 이 단계들 안에 있지는 않습니다. 붓고 열이 나거나, 쉬는 동안에도 점점 심해진다면 어느 단계인지를 헤아릴 것이 아니라 그 원인을 찾는 검사를 받으셔야 합니다.
굳어 가는 데에는 몇 단계가 있고, 단계마다 남아 있는 여지가 다릅니다. 눌리는 힘에 맞춰 바뀐 것이 있고, 물이 줄어 뻑뻑해진 것이 있고, 쌓여서 자리를 잡은 것이 있습니다.
그 조직이 지금 어떤 조건에 놓여 있는가. 굳었다는 것도 한 가지 상태가 아닙니다. 지나가는 중일 수도, 이미 자리를 잡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뼈를 꺾지 않는 추나의 원리에서 이 성질을 치료에 어떻게 쓰는지 이야기했습니다.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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