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려던 일이 병이 될 때
짧은 답
한쪽 어금니가 시리면 정하지도 않았는데 반대쪽으로 씹게 됩니다. 시린 것이 가라앉으면 어느새 돌아오지요. 그런데 그 며칠이 몇 해가 되는 몸이 있습니다. 다친 곳을 지키느라 덜 쓰고 다른 데로 넘긴 것까지는 몸이 제 몫을 한 것인데, 지킬 까닭이 없어진 뒤에도 지키는 방식만 남으면 어떻게 될까요? 한쪽 팔다리가 며칠 새 굵어지거나 무딘 데가 점점 번지면 확인이 먼저입니다.
한쪽 어금니가 시리면 반대쪽으로 씹게 됩니다. 그렇게 하기로 정하지도 않았는데 첫 술에서 이미 그러고 있습니다. 시린 것이 가라앉으면 어느새 다시 양쪽으로 씹습니다.
이 일은 며칠이면 끝납니다. 그 며칠이 몇 해가 되는 쪽도 있습니다. 덜 쓰고, 덜 움직이고, 그만큼을 다른 쪽으로 넘기는 것까지는 같은데 마지막 한 걸음이 다릅니다.
그때는 그것이 맞는 대응입니다
다친 곳이 아직 여물지 않았는데 예전만큼 힘이 걸리면 다시 상합니다. 그래서 몸은 그쪽으로 가는 움직임을 작게 만들고, 둘레를 조여 덜 흔들리게 하고, 힘을 다른 데로 넘깁니다. 아프다는 느낌 자체가 그렇게 하라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여기까지는 몸이 제 몫을 했습니다. 잘못 든 버릇이 아니라 그때 필요해서 한 대응입니다.
다만 이 대응에는 원래 끝이 함께 붙어 있습니다. 지킬 까닭이 없어지면 놓는 데까지가 대응입니다.
대신 일하는 데가 생깁니다
한쪽을 덜 쓰면 그만큼을 다른 데가 맡습니다. 며칠은 티가 나지 않습니다. 몇 달이 되면 맡은 쪽이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오래 앓아 오신 분이 아프다고 짚으시는 곳은 처음 시작한 곳과 다릅니다. 지킨 데가 아니라 지키느라 대신 일한 데입니다. 아픈 곳을 치료해도 낫지 않는 이유에서 이 대목을 따로 다뤘습니다.
이것으로 오래된 통증이 다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몸에는 나란히 놓인 층이 여럿이고, 지키느라 생긴 것은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어느 하나가 대장 노릇을 하지 않습니다.
덜 움직이면 그 부위에서 오는 감각이 줄어듭니다
통증을 겪고 나면 움직이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오래 허리가 아픈 분들의 움직임을 살핀 연구자들은, 다시 아플 일을 줄이려고 몸이 그렇게 맞춰 놓았다고 봅니다. 그렇게 맞춰 놓으면 대신 치르는 것이 생긴다는 말도 함께 붙습니다 — 덜 역동적으로 바뀐 움직임은 같은 곳에 걸리는 부하를 늘리고, 그 부위에서 올라오는 감각을 성기게 만듭니다.
여러 갈래로 나눠 쓰던 움직임이 한 갈래로 줄면 같은 데에 힘이 몰립니다. 그리고 그 부위에서 올라오는 고유수용감각 신호도 줄어듭니다. 어디가 어떻게 놓여 있는지가 덜 올라올수록 조절은 무디어집니다. 무디어진 데는 더 조심해서 쓰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는 사이에 그 방식이 몸에 뱁니다.
움직이는 방식이 달라진 채로 오래 지나면 조직도 그에 맞춰집니다. 만성 요통이 있는 분들과 없는 분들의 등허리를 비교해 본 연구에서, 요통이 있는 쪽은 근막의 층과 층이 서로 미끄러지는 정도가 20%가량 낮았습니다. 다만 어느 쪽이 먼저인지는 그 연구도 가르지 못했습니다. 조직이 그래서 아픈 것인지, 아파서 달리 움직인 끝에 조직이 그렇게 된 것인지.
아끼는 부위는 뒤로 밀립니다
덜 쓰는 데에는 피도 덜 갑니다. 근육이 오므라들었다 펴지는 일도 그 부위로 피를 밀어 넣는 몫을 합니다. 그 일이 줄면 들어오는 쪽부터 더뎌집니다. 감각이 무디어진 데는 몸이 챙기는 차례에서도 뒤로 갑니다. 몸은 신호가 오는 쪽으로 피와 자원을 먼저 보냅니다.
그래서 여러 해 아파 온 데가 뜨겁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손을 대 보면 둘레보다 서늘하고 감각이 무딘 곳도 있습니다. 다친 데가 붉어지고 뜨거워지는 것은 몸이 복구를 시작했다는 신호인데, 이런 데는 그 시작이 잘 올라오지 않습니다. 아픈 곳이 오히려 차갑고 둔하다면에서 이 상태를 자세히 이야기했습니다.
지키느라 덜 쓴 것이 여기까지 옵니다. 그 부위를 아끼는 동안 그 부위가 스스로 고칠 힘도 함께 내려갑니다.
먼저 다른 곳으로
지키느라 생긴 것은 몸을 어떻게 쓰느냐를 따라 움직입니다. 쓰는 것과 상관없이 가는 것이 둘 있습니다.
한쪽 팔이나 다리가 며칠 사이에 눈에 띄게 굵어지고, 만지면 단단하고 눌러서 아플 때. 오래 덜 쓴 데는 몇 달에 걸쳐 천천히 서늘해집니다. 며칠은 그 속도가 아닙니다. 깊은 정맥에 피가 굳어 막히는 일은 오래 움직이지 못한 것이 그 조건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무디어진 데가 점점 넓어지거나, 힘 빠지는 것이 갈수록 더할 때. 지키느라 무디어진 것은 이렇게 번지지 않습니다. 힘이나 감각이 빠지는 것이 점점 진행하면 신경이 눌리는 데가 있는지 서둘러 확인해야 하는 신호로 분류됩니다.
먼저 확인할 곳이 있습니다.
이가 나으면 씹는 쪽이 돌아옵니다. 지키는 일에는 원래 그 돌아오는 대목이 함께 붙어 있습니다.
오래 아파 오신 몸에는 그 대목이 남아 있기도 합니다. 지킬 일은 지나갔는데 지키는 방식만 그대로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프다고 짚으신 데부터 시작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왜 그런지를 반드시 설명드립니다.
몸이 지키느라 한 일에는 나무랄 데가 없습니다. 나무랄 데가 없는 일도 제때 놓지 못하면 남습니다.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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