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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곳을 치료해도 낫지 않는다면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의료 감수 허지영 대표원장

허리가 아파서 허리를 치료했습니다. 잠깐 좋아졌다가 다시 아픕니다. 종아리가 당겨서 종아리를 풀었습니다. 며칠 뒤 그대로입니다.

이런 경험을 여러 번 하신 분들이 진료실에 오십니다. 그리고 대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제 몸이 이상한 걸까요."

이상하지 않습니다. 아픈 곳을 치료했는데 낫지 않는다면, 아픈 곳이 원인이 아닐 수 있습니다.

몸은 문제를 견디기 위해 다른 곳을 씁니다

발목을 삐면 그쪽 다리를 덜 딛습니다. 그러면 반대쪽 무릎과 골반이 더 일합니다. 며칠 지나면 발목보다 반대쪽 골반이 더 아파 옵니다.

이것을 보상(補償)이라고 합니다. 몸이 무너지지 않으려고 스스로 짜낸 대책입니다. 다만 이 대책이 오래가면 대책을 세운 자리가 망가집니다.

그래서 아프다고 느끼는 곳은 대개 사슬의 끝입니다. 처음 문제가 생긴 자리가 아니라, 그 문제를 오래 버텨 준 자리입니다.

떨어진 곳이 아플 수 있습니다

이건 느낌이 아니라 사람에게서 실제로 확인한 이야기입니다.

건강한 분 72명의 정강이 근육에 산성 용액을 넣어 본 연구가 있습니다. 넣은 자리가 아픈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떨어져 있는 발목에서도 통증이 나타났습니다. 여성의 80%, 남성의 40%에서였습니다.

한 자리의 조건이 달라졌을 뿐인데 통증은 다른 자리에서 났습니다.

조직이 실제로 달라져 있다는 것도 재 본 연구가 있습니다. 만성 요통이 있는 분 121명에서 근막의 층과 층이 미끄러지는 정도가 약 20% 줄어 있었습니다. 뼈가 아니라 그 옆에서 미끄러지고 늘어나야 할 조직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손으로 읽습니다

몸은 부품들이 따로 놀지 않습니다. 한 곳이 굳으면 옆이 대신 늘어나고, 한 곳이 덜 움직이면 다른 곳이 더 움직입니다.

  • 아랫배가 팽팽하면 → 허리가 버팁니다
  • 허리가 계속 버티면 → 다리로 가는 신경이 눌립니다
  • 횡격막이 굳으면 → 호흡이 얕아지고 → 목과 어깨가 더 일합니다
  • 한쪽 골반이 틀어지면 → 반대쪽 어깨가 균형을 잡습니다

그런데 이 사슬은 사진에 잘 찍히지 않습니다. 영상 검사는 뼈가 어디 있고 디스크가 얼마나 나왔는지를 보여 주지, 힘이 어디서 어디로 밀리는지는 보여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손으로 읽습니다. 어디가 굳어 있고 어디가 물렁한지, 누르면 어느 쪽이 먼저 방어하는지, 한쪽만 긴장한 곳은 어디인지. 그리고 순서를 되짚습니다. 언제부터 아팠는지, 그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환자분의 기억이 영상보다 더 많은 것을 알려 줄 때가 많습니다.

목이 아파서 오신 분의 배를 만져 보고, 무릎이 아파서 오신 분의 허리를 살피는 이유입니다. 처음 오신 분들은 의아해하십니다. 당연한 반응입니다.

그래서 치료의 순서가 달라집니다

사슬의 끝을 먼저 풀면 잠깐 편해집니다. 사슬의 앞이 그대로면 곧 되돌아옵니다. "치료받을 때만 좋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반대로 앞을 풀면 끝은 저절로 풀리기도 합니다. 다만 순서를 지키려면 시간이 듭니다. 당장 아픈 곳이 아니라 엉뚱해 보이는 곳부터 손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왜 그곳부터 시작하는지를 반드시 설명드립니다. 납득이 안 되는 치료는 오래 가지 못합니다.

여기서 다루는 것은 몸의 여러 축 가운데 물리 축 하나입니다. 화학도 대사도 면역도 나란히 있고, 어느 하나가 대장 노릇을 하지 않습니다. (한약은 무엇을 하는가)

명백한 손상도 있고, 검사로 확인해야 할 신호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검사를 먼저 권해 드립니다.


사슬의 앞을 찾는 일이 늘 성공하지는 않습니다. 여러 사슬이 얽혀 있기도 하고, 시간이 오래 지나 순서가 흐려진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도 아픈 곳을 여러 번 치료했는데 낫지 않으셨다면, 그것은 몸이 이상해서가 아닙니다. 아직 앞을 못 찾았을 뿐입니다.


참고한 자료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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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영 대표원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병리학(질병의 기전)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같은 대학 본초학 교실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약물을 연구했습니다. 질병과 약물을 양쪽에서 연구한 이력이 진료의 바탕입니다 — "이 약이 왜 이 병에 듣는가"를 병리와 약리 양쪽 언어로 설명합니다. 자율신경과 만성·난치질환, 체형·구조의 문제를 현대과학의 언어로 설명하고, 원인에 맞는 치료를 제안합니다. 한의사를 대상으로 처방과 임상 강의를 10년 이상 해 왔으며, 저서 《한의사들이 읽어주는 한의학》 공동 저자입니다. 이 책은 2018년 하반기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되었습니다(기술과학 분야 15종에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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