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은 무엇을 하는가 — 몸을 대신하지 않고, 스스로 수리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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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이 대체 몸에서 무슨 일을 하느냐"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좋은 질문입니다. 한 문장으로 줄이기는 어렵습니다. 몸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으니까요. 다만 제가 진료에서 붙잡고 있는 생각은 분명합니다. 한약은 망가진 부품을 대신 갈아 끼우는 약이 아닙니다. 몸이 스스로 고칠 수 있도록 환경을 되돌리는 약입니다.
병은 한 가지 이유로 생기지 않습니다
먼저 오해 하나를 풀고 싶습니다. 저는 "병은 부품이 망가져서 생기는 게 아니라 환경이 달라져서 생긴다"고 단정하지 않습니다. 부품이 실제로 망가져서 생기는 병도 있습니다. 조직이 상하고, 세포가 죽고, 장기가 고장 나기도 합니다. 그런 경우에는 그에 맞는 치료가 먼저입니다.
그런데 진료실에서 훨씬 자주 만나는 것은, 부품은 멀쩡한데 그 부품이 놓인 환경이 달라진 경우입니다. 검사는 정상인데 계속 아프고, 여러 증상이 함께 오고, 약을 써도 그때뿐인 분들입니다. 그리고 실제 손상이 있는 경우조차, 그 손상을 키우고 회복을 막는 것은 대개 주변 환경입니다. 그래서 저는 부품과 환경을 양자택일로 보지 않고, 함께 봅니다.
몸의 환경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축입니다
'환경'이라는 말을 저는 넓게 씁니다. 몸 안의 환경을 정하는 것은 한 가지가 아닙니다. 여러 조건이 동시에 맞물립니다.
| 축 | 무엇을 다루는가 |
|---|---|
| 물리 | 압력·장력·전단력, 조직의 굳기와 흐름 |
| 시간 | 얼마나 빠르게(속도), 얼마나 오래(누적) |
| 화학 | 산-염기(pH)·이온·전해질 |
| 대사 | 에너지, 인슐린, 미토콘드리아 |
| 면역 | 장 점막면역과 전신 염증의 기준선 |
| 신경 | 자율신경·미주신경의 조절 |
| 내분비 | 호르몬 축의 리듬과 되먹임 |
| 순환 | 혈류와 림프, 노폐물의 청소 |
이 축들은 나란합니다. 어느 하나가 대장 노릇을 하지 않습니다. 압력이 중요한 병도 있지만, 압력이 거의 등장하지 않고 면역과 대사가 먼저 무너지는 병도 있습니다. 병마다 먼저 기울어진 축이 다르고, 하나가 기울면 나머지가 연쇄로 흔들립니다. 그래서 같은 이름의 병도 사람마다 손봐야 할 자리가 다릅니다.
한약이 다른 점 — 한 곳을 세게 누르지 않습니다
여기서 한약의 특징이 드러납니다. 하나의 성분으로 하나의 표적을 세게 누르는 약은, 그 한 축은 확실히 움직입니다. 필요할 때 꼭 필요한 방식입니다.
한약은 결이 다릅니다. 한 첩 안에 수십, 수백 가지 성분이 들어 있고, 이들이 여러 축에 조금씩 동시에 작용합니다. 어느 축은 산-염기를, 어느 축은 장의 면역을, 어느 축은 혈류를, 어느 축은 신경의 흥분을 조금씩 건드립니다. 한 곳을 세게 밀더라도 그 하나만 두고 끝내지 않고, 기울어진 환경 전체를 원래 범위 쪽으로 함께 되돌리는 방식입니다.
이건 제가 세운 생각이 아닙니다. 옛 의서는 처방을 임금과 신하와 보좌로 나누어 짰습니다. 그리고 처방이 커질 때 이렇게 적어 두었습니다 — 임금은 하나, 보좌는 아홉. 처방을 키운다는 것은 세게 미는 것을 늘리는 게 아니라 곁에서 거드는 손을 늘리는 일이었습니다. 2000년 전에 비율까지 정해 둔 셈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닿는가'가 더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위의 축들은 약이 가서 닿는 자리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거기까지 가느냐는 질문이 남습니다.
여기서 흔한 그림이 하나 있습니다 — 먹으면 장에서 흡수돼 혈액을 타고 표적까지 간다는 그림입니다. 저는 이 그림이 여럿 중 하나일 뿐이라고 봅니다. 실제로는 이렇게 갈라집니다.
- 어떤 성분은 혈액을 거치지 않습니다. 정유 같은 것은 세포를 둘러싼 기름막을 그냥 통과합니다. 흡수와 운반이라는 단계 자체가 필요 없는 길입니다.
- 어떤 성분은 장관 점막 세포의 문(채널)을 그 자리에서 직접 두드립니다. 아직 흡수되기 전인데 신호는 이미 갔습니다.
- 어떤 신호는 장의 신경을 타고 곧장 중추로 올라갑니다. 혈액을 안 거칩니다. 먹자마자 속이 편해지는 느낌이 오는 데는 이런 길이 있습니다.
- 어떤 성분은 잠긴 채로 들어와 장내세균이 열어 줘야 활성이 됩니다. 많이 알려진 길인데, 여럿 중 하나입니다.
- 어떤 것은 표적에 안 가고 환경만 바꿉니다. 대장의 환경을 고쳐 점막 세포를 살리는 식입니다.
입구가 하나가 아닙니다. 그리고 여기가 중요한데 — 이 길들이 동시에 열리지 않습니다. 어떤 길은 입에서 몇 분 만에, 어떤 길은 장에서 몇 시간 뒤에, 어떤 길은 며칠에 걸쳐 작동합니다. 그리고 서로 영향을 줍니다. 먼저 열린 길이 나중 길의 조건을 바꿔 놓습니다.
그래서 한약의 작용은 한 줄로도, 부챗살로도 그려지지 않습니다. 입구가 여럿이고, 시간이 어긋나고, 서로를 건드립니다.
제가 드릴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그림
운동회에서 큰 공 굴리기를 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여러 사람이 커다란 공에 달라붙어 밉니다. 손마다 닿는 자리가 다릅니다. 어떤 손은 아래를, 어떤 손은 옆을, 어떤 손은 위를 밉니다. 미는 방향도 제각각입니다. 옆에서 미는 손은 공을 옆으로 밀고 있는 셈이고, 그것만 떼어 놓고 보면 엉뚱해 보입니다. 미는 힘도 같지 않습니다. 어떤 손은 세게 밀고, 어떤 손은 거드는 정도로만 밉니다.
그런데 공은 한 방향으로 굴러갑니다.
한약이 몸에서 하는 일이 이와 가깝습니다. 성분마다 닿는 자리가 다르고, 도착하는 때가 다르고, 미는 방향도 힘도 하나가 아닙니다. 어느 하나만 떼어 내 "이게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으면 답이 이상해집니다. 옆으로 미는 손 하나만 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손이 모여야 공이 굴러갑니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린 옛 처방 규칙이 여기서 다시 보입니다. 임금은 하나, 보좌는 아홉 — 세게 미는 손은 하나로 두고 거드는 손을 늘리라는 말이었습니다. 처방을 짠다는 것은 어느 손을 어디에 얹고 얼마나 세게 밀지를 정하는 일이었던 셈입니다.
이것이 제가 시소 같은 그림을 쓰지 않는 이유입니다. 한쪽이 오르면 한쪽이 내려가는 구조가 아닙니다. 시소는 축이 하나고 방향이 둘뿐인데, 몸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렇게 정리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기가 정말 어려운 대목입니다. 같은 성분이 같은 자리에 가도 양에 따라 반응이 달라집니다. 칼슘은 같은 세포 안에서도 많으면 독이 되고 적으면 기능이 무너집니다. 받는 쪽 수용체가 얼마나 많은지, 얼마나 예민해져 있는지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그 자리에 피가 얼마나 오는지, 점막이 어떤 상태인지에 따라서도 달라집니다.
약이 가는 길과, 몸의 환경과, 몸의 반응 — 이 셋 중 어느 것도 따로 놀지 않습니다.
한약이 좋은 효과를 갖고 있으면서도 실제로 잘 쓰기가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성분표를 외운다고 쓸 수 있는 약이 아닙니다. 공이 지금 어디에 놓여 있는지를 보고, 어느 손을 어디에 얹을지를 정하는 일이라서 그렇습니다.
여기까지는 약리학이 다루는 내용입니다. 이 조각들을 '환경을 되돌린다'는 하나의 그림으로 잇는 자리부터가 제 해석입니다.
예를 하나 들면 — 감초 한 가지도 여러 계통을 건드립니다
말이 추상적으로 들릴 수 있어, 약재 하나만 예로 들겠습니다. 감초입니다.
우연히 고른 것이 아닙니다. 옛사람들은 감초를 '나라의 원로'라고 불렀습니다. 그 뜻을 이렇게 적어 두었습니다 — 임금이 아니면서 임금이 받드는 존재. 자기가 앞장서지 않으면서 판 전체를 고르는 자리라는 뜻입니다.
그 말이 막연한 덕담이 아닙니다. 감초는 서로 다른 세 층에서 일합니다.
달이는 솥에서 — 아직 몸에 들어가기도 전에, 함께 달이는 다른 약재의 성분이 우러나는 것에 영향을 줍니다.
장관 점막에서 — 점막을 안정시켜 다른 약재가 흡수되고 대사되는 과정 자체를 고릅니다.
신경과 근육에서 — 칼슘이 들어오는 문을 누르고 칼륨의 균형을 되돌려, 급하게 올라오는 증상을 눌러 줍니다.
층이 다르고, 작동하는 때가 다르고, 서로를 건드립니다. 감초가 다른 약의 흡수를 바꾸면 그 약의 작용이 바뀌고, 그러면 감초가 놓인 자리의 조건도 따라 바뀝니다. 한쪽이 다른 쪽을 밀기만 하는 게 아니라 서로 주고받습니다.
감초가 그토록 많은 처방에 들어가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순해서가 아니라 다른 약이 제대로 일하도록 판을 고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글이 하고 있는 이야기를, 옛사람은 약재 하나에 맡겨 두었던 셈입니다. 그러니 감초는 '순한 약'이 아닙니다. 실제로 여러 계통에 동시에 작용합니다.
한 가지 약재도 이렇게 여러 갈래로 퍼집니다. 그래서 좋기만 한 약재도, 나쁘기만 한 약재도 없습니다. 같은 작용이 어떤 사람에게는 도움이 되고 어떤 사람에게는 부담이 됩니다. 감초를 오래, 많이 쓰면 혈압이 오르거나 칼륨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한의사가 사람마다 약을 달리 짜고, 용량과 기간을 따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순한 약'이라는 오해는 옛 문헌 탓이 아닙니다. 옛 의서는 감초에도 선을 그어 뒀습니다 — 이런 사람에게는 쓰지 마라, 이 약재들과는 함께 쓰지 마라. 순하다고 아무렇게나 써도 된다고 적은 적이 없습니다. (한약에도 부작용이 있습니다 — 감초 이야기) 혈압약·이뇨제를 드시거나 심장·신장에 문제가 있는 분은 반드시 미리 말씀해 주십시오.
수리는 몸이 합니다
여기가 이 글의 핵심입니다. 한약이 병을 고치는 게 아닙니다. 한약은 환경을 되돌려 놓을 뿐이고, 실제 수리는 몸이 스스로 합니다.
세포는 원래 자기를 고치는 장치를 갖고 있습니다. 낡은 부분을 걷어 내고, 상처를 아물게 하고, 흔들린 균형을 다시 잡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거나 과영양·염증이 오래가면 이 장치가 굼떠집니다. 그렇다면 기울어진 환경을 범위 안으로 돌려놓을 때 이 장치가 다시 제 몫을 할 여지가 생깁니다. 제가 "몸을 대신하지 않고 돕는다"고 말하는 것은 이런 뜻입니다.
환경이 나빠지면 자가 수리가 떨어집니다. 여기까지는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다만 한약으로 환경을 되돌렸을 때 그 장치가 다시 도는지, 아직 사람에게서 확인한 자료는 없습니다. 이 연결은 제가 임상에서 갖고 있는 생각입니다.
이 방식이 모든 병에 맞지도 않습니다. 부품이 크게 망가진 경우, 급하게 생명을 위협하는 경우, 수술이나 강한 약이 먼저인 경우가 분명히 있습니다. 한약은 그런 치료를 대신하지 않습니다. 필요할 때는 검사와 다른 진료를 먼저 권합니다.
그리고 환경을 되돌리는 일에는 시간이 듭니다. 한 번에 극적으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기울었던 축이 하나씩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고, 좋아지는 만큼 약을 줄여 결국 약 없이 몸이 스스로 서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
이것도 제가 정한 원칙이 아닙니다. 옛 의서는 약으로 어디까지 할지를 미리 정해 두었습니다. 센 약은 열 중 여섯까지, 순한 약이라도 열 중 아홉까지. 셋 다 열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 지나치게 하지 마라, 바른 것을 상한다. 남은 몫은 밥과 몸에 넘기라는 뜻입니다.
약이 몸을 대신하지 않는다는 말은, 제가 새로 하는 말이 아니라 2000년 된 처방 규칙입니다.
한약이 무슨 일을 하느냐는 질문에, 저는 "몸의 여러 환경을 함께 되돌려 몸이 스스로 고칠 수 있게 한다"고 답합니다. 짧게 줄이면 많은 것을 잃는 말이지만, 방향만은 분명합니다.
고치는 주인공은 몸이고, 약은 그 조건을 만들어 주는 조력자입니다. 그 조건이 지금 어느 축에서 기울어 있는지, 함께 찾아보겠습니다.
참고한 자료
- 한약의 성분들이 하나의 표적이 아니라 여러 생체분자를 동시에 조절한다는 것을 정리한 종설 — BMB Reports, 2022
- 황금의 바이칼린, 인삼의 진세노사이드가 장내세균의 대사를 거쳐 활성 형태로 바뀐다는 것을 정리한 종설 — Frontiers in Pharmacology, 2023
- 감초 한 가지가 전해질·혈압을 다루는 효소와 염증 경로에 동시에 관여한다는 것을 정리한 종설 — Frontiers in Endocrinology, 2019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