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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을 놓은 그 자리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의료 감수 허지영 대표원장

침에 대해 물으시는 분들이 알고 싶어 하시는 건 대개 하나입니다. 바늘이 들어간 그 자리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좋은 질문입니다. 그리고 답이 어느 정도 나와 있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바늘 끝에서 나오는 물질이 있습니다

2010년에 흥미로운 실험이 있었습니다. 생쥐에게 침을 놓고, 바늘이 들어간 자리의 조직액을 실시간으로 뽑아 성분을 재 본 연구입니다.

침을 놓고 자극하는 동안, 그 자리의 아데노신이라는 물질이 크게 늘었습니다. 기저치의 스무 배가 넘었습니다. 아데노신은 우리 몸이 원래 만드는 물질로, 통증 신호를 누그러뜨리는 쪽으로 작용하는 수용체에 붙습니다.

여기서 이 연구가 한 걸음 더 나갔습니다. 아데노신을 받는 수용체가 없는 생쥐에게 같은 침을 놓아 봤습니다. 그러자 진통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우연히 함께 관찰된 현상이 아니라, 그 물질이 그 자리에서 실제로 일하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2년 뒤, 같은 연구진이 사람에게서 확인했습니다. 13명에게 침을 놓고 그 자리의 조직액을 재 봤더니 역시 아데노신이 올라갔고, 자극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유지되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그다음입니다. 자리를 벗어나면 그 상승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어디에 놓느냐가 측정값에서 갈렸다는 뜻입니다.

바늘이 놓인 자리의 조직

또 다른 갈래의 연구가 있습니다. 침이 들어간 자리에서 손끝에 전해지는 감각 — 한의학에서 오래 이야기해 온 것입니다. 그 정체를 본 연구입니다.

침이 조직 안에 있으면 그 주위의 결합조직이 바늘과 맞물립니다. 사람에게서는 침을 뽑는 데 필요한 힘이 달라졌습니다. 60명을 잰 연구에서 그 힘이 167%까지 올랐습니다. 실 감기듯 결합조직이 바늘에 감긴다는 뜻입니다. 동물에서는 여기에 더해 피부밑 조직의 부피가 변하는 것까지 확인됐습니다. 근육이 수축해서가 아니라, 결합조직 자체가 반응하는 것입니다.

사람 팔을 해부해 살펴본 연구에서는, 경혈로 알려진 자리의 약 80%가 근육 사이나 근육 속을 지나는 결합조직의 면을 따라 있었습니다. 해부 한 건의 결과라 더 봐야 하지만, 손끝의 감각과 해부학이 만나는 지점이라 저는 이 연구를 흥미롭게 봅니다.

결합조직이 당겨지면 그 자리의 세포가 실제로 반응합니다. 조직에서 섬유아세포가 넓게 퍼지고 발을 뻗는 것이 관찰됐습니다. 다만 거기서 치료 효과까지 어떻게 이어지는지, 그 경로는 아직 가설입니다.

덧붙이면, 자극의 세기와 방식은 목적에 따라 다릅니다. 세게 자극할수록 좋은 것이 아닙니다. 자극이 지나치면 그 자리의 통증과 부담이 함께 올라갈 수 있어서, 저는 필요한 만큼만 씁니다.

환자에게서는 어떤가

기전이 있다면 결과도 있어야겠지요.

만성 통증으로 침을 맞은 분들의 자료를 사람 단위로 모아 분석한 대규모 연구가 있습니다. 여러 나라의 39개 시험, 2만 명이 넘는 자료입니다. 결과는 침을 맞은 쪽이 그렇지 않은 쪽보다 통증이 뚜렷하게 덜했고, 그 차이가 1년 뒤에도 대부분 유지되었습니다.

이 정도 규모의 자료가 쌓인 치료법은 많지 않습니다. 저는 이것을 과장하지도, 축소하지도 않고 그대로 봅니다.

그래서 진료실에서는

침은 여러 축 가운데 하나입니다. 통증이 오래된 분에게는 왜 그 자리가 계속 아픈지를 먼저 봅니다. (아픈 곳이 원인이 아닐 때 · 통증이 석 달을 넘기면 달라지는 것)

침 한 가지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 들면, 그때부터 설명이 무리해집니다.

다만 다치고 난 뒤 힘이 빠지거나 감각이 없어졌다면, 밤에 잠을 깰 만큼 심해지는 통증이라면 — 검사가 먼저입니다. 순서를 지키는 편이 안전합니다.


침을 놓은 자리에서는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납니다. 물질이 나오고, 조직이 반응하고, 그것이 사람에게서도 측정되었습니다. 어디에 놓느냐가 측정값에서 갈렸습니다 — 자리를 재는 그 오래된 일이 헛일이 아니었던 셈입니다.

침은 성분과 수용체의 이름을 붙여 설명할 수 있는 치료입니다. 21세기 들어 그 경로들이 하나씩 밝혀지고 있고, 저는 그것을 공부해 여기 옮겨 적습니다.


참고한 자료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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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영 대표원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병리학(질병의 기전)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같은 대학 본초학 교실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약물을 연구했습니다. 질병과 약물을 양쪽에서 연구한 이력이 진료의 바탕입니다 — "이 약이 왜 이 병에 듣는가"를 병리와 약리 양쪽 언어로 설명합니다. 자율신경과 만성·난치질환, 체형·구조의 문제를 현대과학의 언어로 설명하고, 원인에 맞는 치료를 제안합니다. 한의사를 대상으로 처방과 임상 강의를 10년 이상 해 왔으며, 저서 《한의사들이 읽어주는 한의학》 공동 저자입니다. 이 책은 2018년 하반기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되었습니다(기술과학 분야 15종에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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