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년기에는 기준 자체가 옮겨 앉습니다
짧은 답
쉰 즈음, 반지가 안 들어가고 손가락이 뻣뻣한 것이 갱년기와 무슨 상관일까요? 이 시기에는 열감만이 아니라 뼈·힘줄과 인대·손까지, 몸이 지키는 기준 자체가 여러 군데에서 함께 옮겨 갑니다. 크게 흔들리는 것은 수치가 낮아서라기보다 옮겨 가는 동안입니다. 폐경 뒤 재출혈은 확인이 먼저입니다.
아침에 손가락이 잘 펴지지 않습니다. 어제까지 헐렁하던 반지는 손가락 마디에 걸립니다. 무릎도 계단에서 예전 같지 않습니다. 쉰 즈음에 이런 일들이 몰려서 옵니다.
이 시기 이야기를 하면 대개 열이 오르고 잠을 설치는 쪽부터 나옵니다. 손이 뻣뻣한 것이 그 시기와 무슨 상관인가 싶으실 수 있습니다. 상관이 있습니다.
수치가 아니라 기준이 달라집니다
갱년기를 호르몬이 모자란 상태로 설명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런데 수치가 모자란 쪽이 전부라면 줄어든 만큼 처지기만 해야 합니다. 실제로는 오히려 과해지는 일이 있고 예전과 같은 수치인데 느낌만 달라지는 일도 있습니다.
몸은 지켜야 할 기준을 정해 놓고 조절합니다. 지금 수치가 그 기준에서 벗어나면 되돌리는 쪽으로 움직입니다.
이 시기에는 지금 수치만 달라지지 않습니다. 지켜야 할 기준 자체가 새 자리로 옮겨 갑니다. 그것도 한 군데가 아니라 여러 군데에서 함께 옮겨 갑니다.
옮겨 가는 동안 몸은 두 자리 사이에 놓입니다. 새 기준에서 보면 지금 몸이 어긋나 있으니 되돌리려 애쓰는데, 옛 기준에 맞춰 온 것들은 아직 그대로입니다. 달라진 데가 없어 보이는데 몸이 다르게 반응하는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옮겨 앉는 자리가 여럿입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더위를 느끼는 쪽입니다.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 않던 온도에서 몸이 열을 버리기 시작합니다. 얼굴로 열이 오르고 가슴이 답답한 이야기는 따로 다룬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에스트로겐이 하는 일은 생식에만 있지 않습니다. 뼈에도, 혈관에도, 피부에도, 신경에도, 방광에도 에스트로겐 수용체가 있습니다. 힘줄과 인대 같은 결합조직에도 있습니다. 몇 군데에 모여 있지 않고 몸 거의 전체에 퍼져 있습니다.
뼈가 그렇습니다. 뼈는 다 자라고 나면 그대로 있지 않고 평생 허물고 다시 쌓기를 되풀이합니다. 그 두 쪽 사이의 균형을 정하는 데 에스트로겐이 한몫을 합니다. 이 시기에 그 균형이 옮겨 앉으면 예전과 똑같이 살아도 뼈에 남는 결과가 달라집니다.
힘줄과 인대도 그렇습니다. 이 조직들의 주된 재료가 콜라겐인데, 콜라겐을 새로 만들고 갈아 끼우는 일에 이 호르몬이 관여하는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 힘줄과 인대가 예전만큼 무르지 않게 될 수 있습니다.
처음에 말씀드린 손이 여기 걸립니다. 손가락과 손목은 힘줄이 좁은 통로를 지나는 곳이 많아서, 조직의 성질이 조금만 달라져도 먼저 표가 납니다.
나이만으로는 이 몇 해가 풀리지 않습니다
나이 들어 조직이 낡아 가는 일이라면 그냥 노화라 부르면 됩니다. 그런데 왜 하필 이 몇 해에 몰려서 오는가.
같은 손 증상이 나오는 시기가 하나 더 있습니다. 아이를 낳고 젖을 먹이는 몇 달입니다. 두 시기는 나이가 수십 년 차이 납니다.
손을 얼마나 쓰느냐가 상관없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반복해서 힘주어 쥐는 일이 잦으면 그 자리에 부담이 쌓입니다. 아이를 안고 먹이는 몇 달은 오히려 손을 새로 많이 쓰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쓰는 몫은 분명히 한 층입니다. 다만 그 층만으로는 스무 몇 살의 손과 쉰 몇 살의 손이 같은 자리에서 같은 일을 겪는 것까지 풀리지 않습니다.
두 시기에는 여러 층이 함께 놓여 있습니다. 잠이 끊기고, 붓는 정도가 달라지고, 손 쓰는 양이 달라지고, 그 무렵 달라져 있는 호르몬도 에스트로겐 하나가 아닙니다. 그 여러 층 가운데 두 시기가 함께 갖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 짧은 기간에 에스트로겐이 급하게 내려간다는 것. 나이도 손 쓰는 양도 저마다 겹쳐 있지만, 이 한 층은 두 시기에 나란히 놓입니다.
수치가 낮은 것과 급하게 내려가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폐경이 지나고 여러 해가 흐르면 수치는 계속 낮은 채로 있습니다. 그런데 겪는 일의 크기는 그 수치만 따라가지 않습니다. 몸이 크게 흔들리는 것은 수치가 낮아서라기보다 자리를 옮기는 동안입니다.
옮겨 앉는 동안이 가장 시끄럽습니다
새 자리에 몸이 익어 가면서, 조절도 차츰 거기에 맞춰 갑니다. 열이 오르는 증상을 겪은 분들을 여러 해 지켜본 조사에서, 그 증상이 이어진 기간은 짧은 분과 긴 분을 줄 세웠을 때 한가운데가 7.4년이었습니다. 이행기 초입에 시작된 분들은 그 한가운데가 11.8년을 넘었습니다. 기간은 사람마다 크게 다릅니다.
그러니 지금의 불편을 앞으로 계속될 일의 예고로 읽지 않으셔도 됩니다. 열감처럼 시간이 지나며 잦아드는 것도 있습니다.
다만 다 지나간다는 말씀은 아닙니다. 뼈처럼 새 기준에서 계속 살펴야 하는 곳도 있습니다. 지나가는 몫과 남는 몫이 함께 있습니다.
갱년기 하나로 돌리면 놓칩니다
겪으시는 일을 전부 이 시기 탓으로 돌리면 놓치는 것이 생깁니다. 사오십 대는 근육이 줄기 시작하는 때이기도 하고, 오래 쌓인 생활의 몫이 드러나는 때이기도 합니다. 갑상선처럼 비슷한 증상을 내는 곳도 있습니다.
반대로 전부 다른 데로 돌려도 마찬가지입니다. 물어야 할 것은 갱년기냐 아니냐가 아니라, 지금 이 몸에서 무엇과 무엇이 함께 움직이고 있느냐입니다.
반지가 뻑뻑해진 것이 나이 탓만은 아닙니다. 몸이 지키던 기준이 옮겨 앉는 중이고, 손은 그 변화가 먼저 표 나는 곳 가운데 하나입니다.
폐경 뒤에 다시 출혈이 있다면 확인부터 하셔야 합니다. 이 시기에 으레 있는 일이 아닙니다. 살이 눈에 띄게 빠지거나, 가슴이 몹시 뛰고 손이 떨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무렵에 겹쳐 오는 일이라 그냥 지나치기 쉬운데, 다른 데서 오는 일일 수 있습니다.
호르몬을 보충할지 말지는 이 글이 다루는 일이 아닙니다. 그 결정이 어느 쪽이든, 이 시기의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그대로 남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이 몇 해를 무엇이 줄어드는 시기로만 보지 않으셔도 됩니다. 줄어드는 중이라기보다 옮겨 앉는 중입니다. 지금 겪는 일들은 저마다 놓인 데가 있습니다.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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