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아픈지를 묻습니다
짧은 답
계단을 내려올 때만 아픈 무릎과 가만히 누워 있어도 아픈 무릎 — 같은 「무릎이 아프다」인데 왜 다음에 볼 곳이 다를까요? 아침에 뻣뻣한지, 식사와 함께 오는지, 닿을 때인지, 어느 동작에서인지 — 「언제」가 갈래를 가릅니다. 통증이 날마다 커지고 밤잠을 깨울 정도라면 진료와 검사가 먼저입니다.
목차
계단을 내려올 때만 무릎이 아픕니다. 평지에서는 괜찮고, 앉아 있으면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다른 분은 반대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 있는데 아픕니다. 자세를 바꿔도 그대로입니다.
두 분 다 「무릎이 아프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제가 다음에 볼 곳은 서로 다릅니다.
「언제」는 시간만이 아닙니다
언제 아프냐고 물으면 대개 시각으로 답합니다. 아침에, 저녁에, 자다가. 그것도 중요한 답인데, 제가 묻는 「언제」에는 몇 가지가 더 들어 있습니다.
무엇과 함께 오는지도 「언제」입니다. 식사를 거른 날인지, 먹고 한참 뒤인지. 무엇을 할 때인지도 「언제」입니다. 닿을 때인지, 누를 때인지, 어떤 동작에서인지, 힘을 얼마나 줄 때인지.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도 「언제」입니다.
같은 곳이 아파도 이 중에서 어디에 걸리느냐에 따라, 그 몸에서 함께 볼 것이 달라집니다.
아침에 뻣뻣하다 차차 풀리는 것
일어나서 한동안 뻣뻣하다가 움직이면 차차 나아진다는 말씀을 들으면, 저는 결합조직 쪽을 함께 봅니다. 힘줄과 인대 같은 조직에는 물을 끌어당겨 미끄러지게 하는 성분이 들어 있습니다. 히알루론산입니다. 그 성질이 달라지면 오래 안 움직인 뒤에 뻑뻑하고, 움직이는 동안 나아지는 모양이 나옵니다.
반대로 오후로 갈수록 심해진다면 근육이 지치는 쪽을 함께 봅니다. 쓴 만큼 쌓이는 것이니 하루가 갈수록 무거워집니다.
식사와 함께 오는 것
시간이 아니라 식사에 걸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래 굶은 날에 심하다거나, 단 것을 먹고 얼마 뒤에 온다고 합니다. 이때는 통증만 보지 않고 대사 쪽 조건을 함께 놓습니다. 술 마신 다음 날, 잠을 설친 다음 날의 몸살에서 말씀드린 것이 여기서 통증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닿을 때와 누를 때
가만히 있으면 괜찮은데 닿거나 눌리면 아픕니다. 옷이 스치는 정도, 앉을 때 눌리는 정도에서 나옵니다. 이때는 그 부위의 혈관 쪽 상태를 함께 살핍니다.
여기서 갈라 두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아프지 않아야 할 자극까지 아픔으로 들어오는 경우는 다릅니다. 옷깃이 스쳐도 아프고 미지근한 물에도 아픕니다. 이것을 이질통이라고 부릅니다. 신경이 다친 뒤에 남기도 하고, 조직은 아물었는데 신호를 받는 쪽의 역치가 내려가 있는 경우입니다. 그러니 이때는 아픈 부위만 들여다봐서는 답이 잘 안 나옵니다.
어떤 동작에서, 얼마나 힘을 줄 때
특정 동작에서만 아프다면 저는 그 동작을 자세히 묻습니다. 어느 각도에서인지, 힘을 얼마나 줄 때인지, 늘릴 때인지 당길 때인지. 근육이 하는 몫과 힘줄이 하는 몫이 여기서 갈립니다. 늘어날 때 걸리는지 힘을 쓸 때 걸리는지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안 하는데 아플 때
눕든 앉든 아프고, 자세를 바꿔도 그대로입니다. 움직임과 상관없이 이어지는 통증에는 염증 쪽이나 신경 쪽의 가능성을 함께 놓습니다.
감각이 오히려 둔해진 부위 둘레에서 아픔이 나오는 경우도 여기 걸칩니다. 손끝이 남의 살 같은데 그 언저리가 아프다고 합니다. 무디다는 것과 아프다는 것은 반대말처럼 들리는데, 신경이 지나는 길에서 생기는 일에서는 둘이 한자리에 함께 나타납니다.
나아지는 중에도 아픕니다
여기서 환자분들이 가장 불안해합니다.
굳어 있던 것이 풀리기 시작하면서, 안 쓰던 범위를 다시 쓰기 시작하면서 통증이 오히려 올라오기도 합니다. 그러면 대개 이렇게 생각합니다. 더 나빠진 건가.
신경은 익숙한 자극에는 관대하고 새로운 자극에는 민감합니다. 그래서 움직임이 늘어난 바로 그 시기에 신호가 커지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참고 밀어붙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회복하느라 아픈 것과 무리해서 아픈 것은 경계가 겹칩니다.
아픔의 세기만으로는 어느 쪽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다만 통증이 날마다 커지고, 쉬는 동안에도 줄지 않고, 밤에 잠을 깨울 정도라면 — 이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때는 진료와 검사가 먼저입니다.
그래서 귀찮을 만큼 묻습니다
몸에서 제가 직접 찾아낼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눌러 보고, 움직여 보고, 재어 보는 것들입니다. 그쪽이 더 객관적일 때도 많습니다.
그런데 언제 아픈지는 겪은 사람만 압니다. 어느 검사에도 그 항목은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세세하게 묻습니다. 아침이 심한지 저녁이 심한지, 식사와 관련이 있는지, 닿을 때인지 누를 때인지, 어느 동작에서인지, 쉬고 있을 때도 그런지.
귀찮을 만큼 묻는 데에는 그런 까닭이 있습니다.
다만 하나로 갈리지는 않습니다
여기까지 읽으면 내 것은 어디에 해당하나 하고 세어 보게 됩니다. 그런데 오래된 통증에서 하나로 깨끗하게 갈리는 경우는 오히려 드뭅니다. 아침에도 뻣뻣하고 오후에도 무겁고 눌러도 아프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물음은 답을 하나 고르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층들이 함께 있는지, 그리고 지금은 어느 쪽 몫이 큰지를 보려는 것입니다. 같은 자극에도 무뎌지는 사람과 예민해지는 사람으로 갈렸고, 그 방향이 그 사람의 성질로 유지됐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오래된 기록에서도 아픔을 부위로만 나누지 않았습니다. 언제 아픈지, 무엇에 아픈지로 갈랐습니다. 지금 우리가 아는 것과 그 대목에서 만납니다. 다만 옛 갈래와 지금의 설명이 한 칸씩 정확히 포개지지는 않습니다. 억지로 맞춰 놓기보다 어긋나는 대로 두는 편이 낫다고 봅니다.
「아프다」는 말 한마디 안에는 서로 다른 여러 가지가 들어 있습니다. 언제 아픈지를 함께 놓고 보면 그중 몇 가지가 갈립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좋아지는 중이라서 아픈 것도 들어 있습니다.
통증을 작게 볼 일이 아닌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아픔은 그 부위 하나로 끝나지 않고, 신경계와 면역계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진료가 필요하신 경우
이 글이 자기 얘기 같으셨습니까?
진료 시간을 바로 고르시거나, 오시기 전에 여쭙고 싶은 것을 먼저 보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