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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재의 매운맛은 왜 몸에 작용하는가 — 성분이 여는 세포의 문

〈약이 몸에서 하는 일〉 · 10편 중 8번째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글 · 의료 내용 확인 허지영 대표원장 · 한의학 병리학 박사

짧은 답

생강, 계피, 박하, 산초. 이 익숙한 재료들의 맛과 향은 그냥 감각이 아닙니다. 세포막에 있는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그 문을 이온채널이라고 부릅니다.

생강은 왜 몸을 덥히는 느낌을 줄까요. 박하는 왜 시원할까요. 매운 산초를 씹으면 왜 혀가 얼얼할까요.

저는 이 익숙한 감각들을 '맛'이라기보다 몸의 세포와 성분이 직접 주고받는 신호로 읽습니다. 그 신호가 어디서 오가는지 보겠습니다.

세포에는 문이 있습니다

세포를 둘러싼 막에는 이온채널이라는 문들이 박혀 있습니다. 이 문이 열리면 칼슘 같은 이온이 세포 안팎으로 드나들고, 그 움직임이 곧 신호가 됩니다. 신경이 무언가를 '느끼는' 것도, 근육이 반응하는 것도 이 문이 여닫히는 데서 시작합니다.

그중 TRP 채널이라 부르는 무리가 있습니다. 이 문들은 온도와 자극을 감지합니다. 뜨거움, 차가움, 매움, 쏘는 느낌 — 우리가 감각이라 부르는 것의 상당 부분이 이 문을 통해 들어옵니다.

그런데 이 문을 여는 열쇠가, 뜻밖에도 우리가 아는 약재들 속에 있습니다.

한약재의 성분이 세포막의 이온채널(TRP)에 리간드로 작용하는 방식

약재의 성분이 그 문에 꽂힙니다

성분이 이런 문에 딱 맞아 들어가 문을 여닫게 하는 것을 리간드로 작용한다고 말합니다. 열쇠가 자물쇠에 꽂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이건 비유가 아니라, 실제로 확인된 결합입니다.

생강의 매운 성분인 진저롤과 쇼가올TRPV1이라는 문에 붙습니다. 고추의 캡사이신이 붙는 바로 그 자리입니다. 채널의 구조까지 파고든 연구에서도 같은 자리에 같은 방식으로 붙어 문을 연다고 밝혀져 있습니다. 생강이 '덥다'고 느껴지는 데는 이런 분자 수준의 이유가 있습니다.

계피의 계피알데하이드와 마늘의 알리신은 쏘는 자극을 감지하는 TRPA1을 엽니다. 박하의 멘톨은 시원함을 감지하는 TRPM8에 붙습니다. 산초와 화초의 성분은 TRPA1과 TRPV1 양쪽을 건드립니다.

이 의학을 세운 사람들이 이 문의 이름을 알았을 리는 없습니다. 다만 덥다·시원하다·얼얼하다는 감각으로 재료를 나눠 두었고, 나중에 화학이 그 자리에 이유를 붙여 주었습니다.

이 문이 열리는 자리는 어디인가

의아한 점이 있습니다. 이 성분들이 혈액에 남는 농도는 아주 낮습니다. 문을 열기에 넉넉한 양이 아닙니다. (한약은 왜 듣는가 — 농도의 역설)

그래서 저는 이 문 이야기를 약재가 몸에 닿는 자리의 이야기로 읽습니다. 입 안, 위와 장, 피부 — 여기서는 약재가 아직 묽어지기 전이고, 문을 열기에 충분한 농도로 만납니다. 생강이 넘어갈 때 속이 먼저 더워지는 것이 그 자리입니다.

문이 열린 다음은 또 다릅니다. 이온채널은 열쇠 하나가 꽂히면 그 문으로 수많은 이온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신호 하나가 안에서 크게 불어납니다. 다만 그 증폭은 열쇠가 꽂힌 다음 이야기이고, 꽂히는 데 필요한 양은 따로입니다.

한 열쇠가 여러 자물쇠에 맞습니다

눈여겨볼 대목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 성분들은 한 문만 여는 열쇠가 아닙니다. 마늘의 알리신은 TRPA1과 TRPV1을 함께 열고, 산초의 성분도 그 두 문에 같이 걸칩니다. 하나가 여러 자리에 동시에 닿습니다.

저는 이것을 한약이 몸에서 일하는 방식의 한 층으로 봅니다. 성분 하나가 여러 문을 건드리고, 한 첩에는 그런 성분이 여러 가지 들어갑니다. 한 곳을 세게 누르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지점을 동시에 조금씩 건드리는 쪽입니다. (산성이 된 자리에서 약이 깨어나는 이야기도 같은 그림의 다른 조각입니다.)

어디까지 밝혀져 있나

성분이 이 문들에 붙는 데까지는 세포와 구조 연구가 잘 보여 줍니다. 다만 그 상당수가 세포와 시험관에서 본 것입니다. 사람 몸 안에서, 그리고 여러 약재가 함께 든 한 첩 속에서 같은 일이 같은 크기로 일어나는지는 아직 보는 중입니다.

그래서 "생강이 TRPV1을 연다"에서 "그러니 생강이 이 병을 낫게 한다"로 곧장 건너가지는 않습니다. 성분이 문에 붙는 것과 그 사람의 병이 나아지는 것 사이에는 여러 단계가 있고, 그 단계는 사람과 상태에 따라 다릅니다.

문 이름을 알면 쓸 자리가 보입니다

이 문들의 이름을 알고 있으면 쓸 자리가 보입니다. 자극에 신호가 과하게 올라오는 분과, 반응이 더딘 분은 손봐야 할 곳이 다릅니다. (같은 병인데 왜 사람마다 다르게 치료할까)

생강도 계피도 박하도, 음식으로 즐기시는 것은 좋습니다. 다만 특정 성분을 약처럼 다량으로, 오래, 직접 달여 드시는 것은 권하지 않습니다. 문을 여는 것이 효과라면, 지나치게 여는 것은 부담입니다. 무엇을 얼마나 쓸지는 그 사람의 상태에 맞춰 정할 일입니다. (약의 효과와 부작용은 같은 자리에서 나옵니다)


생강이 덥고 박하가 시원한 것은 기분 탓이 아닙니다. 성분이 세포의 문을 실제로 여닫기 때문입니다.

문에는 이름이 있고, 열쇠에도 이름이 있습니다. 저는 그 이름을 알고 쓰려 합니다.


참고한 자료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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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허지영 대표원장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 서울 광진구 자양동 · 구의역 4번 출구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단독 저서 《몸을 돌려놓는 한약》 · 《검사 밖의 몸》 · 《과학의 눈으로 읽는 한의학》 · 직접 쓴 글 284편

이력 펼쳐보기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병리학(질병의 기전)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같은 대학 본초학 교실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약물을 연구했습니다. 질병과 약물을 양쪽에서 연구한 이력이 진료의 바탕입니다 — "이 약이 왜 이 병에 듣는가"를 병리와 약리 양쪽 언어로 설명합니다.

몸을 다층으로 보고, 환경 변화에 적응해 돌아오는 힘(회복 탄력성)을 살피며, 적응이 안 될 때는 몸 안의 환경 쪽을 손대는 것 — 이 세 관점이 진료의 바탕입니다. 자율신경과 만성·난치질환, 체형·구조의 문제를 현대과학의 언어로 설명하고, 원인에 맞는 치료를 제안합니다. 한의사를 대상으로 처방과 임상 강의를 10년 이상 해 왔으며, 저서 《한의사들이 읽어주는 한의학》 공동 저자입니다. 이 책은 2018년 하반기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되었습니다(기술과학 분야 15종에 포함).

단독 저서로 《과학의 눈으로 읽는 한의학》(2026), 《검사 밖의 몸》(2026), 《몸을 돌려놓는 한약》(2026) 세 권을 썼습니다. 첫 책은 한약이 몸 안에서 어떤 길을 지나는지를 성분과 기전의 이름까지 따라가며 설명했고, 두 번째 책은 검사는 정상이라는데 여전히 불편한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여섯 갈래로 나누어 살폈습니다. 세 번째 책은 그 몸이 어디서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는지를 자율신경, 만성 대사성 질환, 만성 통증, 여성의 몸, 아이와 청소년, 노년기, 낫지 않는 병의 일곱 갈래로 봅니다.

이 글을 쓴 곳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은 서울 광진구 자양동(자양로 46, 오띠모빌딩 2층 201호)에 있습니다. 구의역 4번 출구에서 걸어서 7분입니다. 자율신경·만성통증·난치질환처럼 검사에서 잘 잡히지 않는 불편을 주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