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장이 쓴 글 소아청소년 클리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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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지 않는 아이, 잘 크지 않는 아이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글 · 의료 내용 확인 허지영 대표원장 · 한의학 병리학 박사

짧은 답

돌이 지나면서 밥그릇을 밀어내는 아이 — 이렇게 안 먹는데 잘 클 수 있을까요? 두 걱정은 한 문장으로 오지만 같은 물음이 아닙니다. 안 먹어서 덜 자라는 게 아니라, 자라는 속도가 느려지며 먹는 양이 줄어드는 쪽입니다. 답은 한 끼가 아니라 성장 곡선에 있습니다. 삼킬 때 걸려 하거나 되풀이해 토하거나 몸무게가 줄면 따로 확인이 먼저입니다.

돌이 지나면서 아이가 밥그릇을 밀어냅니다. 그전에는 주는 대로 받아먹었습니다. 먹이는 사람도 차리는 음식도 그대로인데 아이만 달라졌습니다.

그러면 걱정이 하나 더 붙습니다. 이렇게 안 먹는데 잘 클 수 있을까.

두 걱정은 늘 한 문장으로 같이 옵니다. 그런데 같은 물음은 아닙니다.

자라는 속도가 먼저 바뀝니다

첫해에 아이의 몸무게는 태어났을 때의 3배 가까이 됩니다. 그리고 그 속도는 돌을 지나면서 크게 떨어집니다.

몸이 덜 필요로 하면 덜 먹습니다. 첫돌이 지나면 식욕이 뚝 떨어집니다. 소아청소년과에서는 이 시기에 으레 있는 일로 봅니다. 자라는 속도가 느려졌으니 예전만큼 먹을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니 이 무렵에는 순서를 뒤집어 봐야 합니다. 안 먹어서 덜 자란다기보다 자라는 속도가 느려지면서 먹는 양도 줄어드는 쪽입니다.

하루 단위로 세면 더 어긋납니다. 어제는 한 그릇을 비우고 오늘은 반도 안 먹습니다. 그런데 며칠을 합쳐 놓고 보면 얼추 맞아떨어집니다. 한 끼를 세는 사람에게는 안 보이고 한 주를 보는 사람에게만 보입니다.

키는 한 해 내내 같은 속도로 늘지 않습니다

자라는 속도는 한 해 안에서도 달라집니다.

학령기 아이들의 키를 반년씩 나누어 재어 본 연구가 있습니다. 한 해에 자란 키 가운데 남자아이는 67%, 여자아이는 60% 넘게 여름이 든 반년에 몰려 있었습니다. 나머지가 겨울이 든 반년입니다. 다른 아이와 비교한 것이 아니라 같은 아이의 같은 한 해 안에서 그렇습니다.

그러니 요즘 통 안 큰다는 말이 겨울에 자주 나오는 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실제로 덜 자라는 계절을 보고 계신 것입니다.

한 달을 재고 판단하면 그 아이가 아니라 그 계절을 판단하게 됩니다. 자라는 일은 몇 달을 두고 봐야 보입니다.

아이마다 자기 곡선이 기준입니다

여기서 두 걱정이 갈립니다.

또래보다 작다는 말과 자기 속도가 느려졌다는 말은 다릅니다. 아이의 키와 몸무게는 성장 곡선 위에 백분위로 표시됩니다. 아래쪽 선에 있어도 그 선을 따라 꾸준히 올라간다면 그 선이 그 아이의 기준입니다. 진료지침도 그렇게 봅니다. 건강한 아이는 대체로 자기 곡선을 따라갑니다.

그러니 지금 어디에 있는지가 아니라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봅니다. 특히 몸무게가 있던 선에서 아래로 여러 칸을 가로질러 내려올 때입니다. 곡선이 그렇게 꺾이면 따로 봅니다.

그래서 잘 먹지 않는 것과 잘 크지 않는 것은 같은 물음이 아닙니다. 먹는 양이 날마다 달라도 곡선은 꾸준히 따라가는 아이가 있습니다.

안 먹는 것이 결과일 때

그렇다고 안 먹는 아이를 그냥 두어도 된다는 말은 아닙니다. 앓는 동안 안 먹는 것과 앓지도 않는데 안 먹는 것은 다릅니다. 지금 하는 이야기는 뒤의 것입니다.

배고픔은 마음먹어서 생기는 감각이 아닙니다. 위가 비워질 때 올라오는 신호입니다. 비우는 일이 더디면 밥때가 되어도 그 신호가 올라오지 않습니다. 아이가 안 먹겠다고 버티는 것이 아니라 아직 배가 안 고픕니다. 위가 비워지지 않으면 배가 고프지 않다는 이야기에서 이 길을 다뤘습니다.

잠도 여기 걸립니다. 늦게 자고 아침에 겨우 일어나는 아이는 하루가 뒤로 밀린 채 시작합니다. 그러면 아침상 앞에서 배가 고프다는 말이 나올 리 없습니다.

저는 아침에 일어나서 얼마 만에 배가 고프다고 하는지를 묻습니다. 입맛부터 끌어올리려 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클지는 대체로 유전과 대사가 정합니다. 거기에 손을 대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먹는 습관으로 볼 일이 아닌 때

안 먹는 모습 뒤에 다른 사정이 있는 아이도 있습니다. 삼킬 때 걸려 하거나 사레가 잦을 때. 씹기를 힘들어할 때. 먹으면서 아파하거나 유난히 울 때. 먹은 뒤 되풀이해 토할 때.

이런 때는 먹이는 방법을 바꾸는 쪽으로 가지 않습니다. 삼키고 씹고 내려가는 일 가운데 어디가 걸리는지를 따로 봅니다.

다만 돌 앞뒤의 어린아이는 더 조심해서 봅니다. 이 나이에는 사레가 잦거나 먹은 뒤 자주 토하는 것이 먹는 습관과 상관없는 데서 올 때가 있습니다. 몸무게가 늘지 않고 오히려 줄 때도 그렇습니다.


먹는 양은 아이가 지금 어떤 속도로 자라는지를 따라갑니다. 잘 먹지 않는 아이를 보고 계신 부모님께 먼저 말씀드립니다. 잘못 먹이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잘 크지 않는 것은 다른 물음입니다. 그 답은 한 끼에 있지 않고 곡선에 있습니다.

두 가지를 한꺼번에 걱정하시면 둘 다 흐려집니다. 나누어 놓으면 먼저 답할 물음이 하나로 줄어듭니다.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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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허지영 대표원장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 서울 광진구 자양동 · 구의역 4번 출구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단독 저서 《몸을 돌려놓는 한약》 · 《검사 밖의 몸》 · 《과학의 눈으로 읽는 한의학》 · 직접 쓴 글 284편

이력 펼쳐보기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병리학(질병의 기전)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같은 대학 본초학 교실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약물을 연구했습니다. 질병과 약물을 양쪽에서 연구한 이력이 진료의 바탕입니다 — "이 약이 왜 이 병에 듣는가"를 병리와 약리 양쪽 언어로 설명합니다.

몸을 다층으로 보고, 환경 변화에 적응해 돌아오는 힘(회복 탄력성)을 살피며, 적응이 안 될 때는 몸 안의 환경 쪽을 손대는 것 — 이 세 관점이 진료의 바탕입니다. 자율신경과 만성·난치질환, 체형·구조의 문제를 현대과학의 언어로 설명하고, 원인에 맞는 치료를 제안합니다. 한의사를 대상으로 처방과 임상 강의를 10년 이상 해 왔으며, 저서 《한의사들이 읽어주는 한의학》 공동 저자입니다. 이 책은 2018년 하반기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되었습니다(기술과학 분야 15종에 포함).

단독 저서로 《과학의 눈으로 읽는 한의학》(2026), 《검사 밖의 몸》(2026), 《몸을 돌려놓는 한약》(2026) 세 권을 썼습니다. 첫 책은 한약이 몸 안에서 어떤 길을 지나는지를 성분과 기전의 이름까지 따라가며 설명했고, 두 번째 책은 검사는 정상이라는데 여전히 불편한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여섯 갈래로 나누어 살폈습니다. 세 번째 책은 그 몸이 어디서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는지를 자율신경, 만성 대사성 질환, 만성 통증, 여성의 몸, 아이와 청소년, 노년기, 낫지 않는 병의 일곱 갈래로 봅니다.

이 글을 쓴 곳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은 서울 광진구 자양동(자양로 46, 오띠모빌딩 2층 201호)에 있습니다. 구의역 4번 출구에서 걸어서 7분입니다. 자율신경·만성통증·난치질환처럼 검사에서 잘 잡히지 않는 불편을 주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