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재 하나가 다른 약재의 길을 바꿉니다
짧은 답
왜 약재 하나만 빼거나 더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습니다. 한 약재가 옆에 있는 약재의 흡수와 대사를 바꿔 놓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조합에는 그 조율이 이미 들어가 있습니다.
"이 약재 하나만 빼면 안 되나요?"
가끔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향이 부담스럽거나, 어디서 그 약재 이야기를 들으셨거나,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충분히 하실 수 있는 질문입니다. 다만 제가 쉽게 빼거나 넣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한 솥에 함께 달일 때 솥 안에서 화학이 일어난다는 이야기는 앞서 드린 적이 있습니다. (약재를 한 솥에 함께 달이는 이유) 오늘 말씀드릴 것은 그다음입니다. 솥에서 끝나지 않고, 몸 안에 들어가서도 서로의 길을 바꿉니다.
꿀은 단맛 때문에 넣는 것이 아닙니다
옛 처방 중에는 성질이 사나운 약재를 쓸 때 꿀을 함께 넣고 달이는 방식이 있습니다. 그것도 맛을 낼 정도가 아니라, 약재보다 훨씬 많은 양을 씁니다.
오래 저는 이것을 먹기 좋으라고 넣은 것으로만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 조합을 실제로 재 본 자료를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꿀과 함께 쓰면 그 약재 성분의 혈중 곡선이 통째로 다시 그려집니다. 가장 높이 올라가는 농도도, 거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몸에서 빠져나가는 속도도 전부 달라집니다. 그리고 방향이 한쪽으로만 가지 않습니다. 독성이 문제가 되는 계열은 줄고, 약으로 쓰려는 계열은 오히려 더 살아납니다.
꿀이 브레이크를 밟은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 얼마나 통과할지를 다시 정한 것에 가깝습니다. 같은 약재인데 옆에 무엇이 있느냐에 따라 몸에 도착하는 내용이 달라집니다.
흡수하는 문과 분해하는 효소를 함께 건드리는 약재가 있습니다
몸에는 먹은 것을 도로 밀어내는 문이 있고, 간에는 그것을 분해하는 효소가 있습니다. 약이 얼마나 몸에 남을지는 이 두 곳에서 상당 부분 정해집니다.
황련처럼 쓰고 노란 약재의 성분은 이 두 곳을 함께 붙잡습니다. 밀어내는 힘이 약해지고 분해가 느려지니, 같이 들어온 다른 성분의 농도가 올라갑니다.
사람에서도 측정돼 있습니다. 건강한 성인 17명에게 이 성분을 2주 동안 먹이고 다른 약의 처리를 재 봤더니, 분해 효소 세 종류의 활성이 모두 떨어졌습니다. 한 약물은 몸에 노출되는 총량이 40% 늘었습니다.
다만 이 연구는 성분만 따로 뽑아 정해진 양을 계속 먹인 조건입니다. 처방 안에서 다른 약재와 함께 들어갈 때 그대로 재현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방향은 분명합니다. 이 약재는 옆자리에 영향을 줍니다.
그래서 이런 약재가 들어가는 자리에서 저는 임의로 가감하기보다 오래 쓰여 온 조합을 그대로 씁니다. 예전 의가들이 이 기전을 알았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오래 살아남은 조합에는 조율이 이미 들어가 있고, 그것을 제가 한 칸 옮기면 무엇이 함께 움직일지 저도 다 알지 못합니다.
층이 여럿이고, 켜지는 때가 다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약재끼리 서로 방해하거나 돕는 이야기로 들릴 수 있는데, 실제로는 한 층이 아닙니다.
같은 약재가 달이는 솥에서 한 번, 장에서 흡수될 때 또 한 번, 간에서 처리될 때 다시 한 번 옆의 약재에 관여합니다. 그리고 이 층들이 동시에 켜지지 않습니다. 솥에서의 일은 이미 끝나 있고, 흡수는 몇십 분 안에, 분해에 걸리는 영향은 며칠에 걸쳐 나타나기도 합니다.
제가 늘 말씀드리는 그림이 여기서도 같습니다. 여러 손이 큰 공의 서로 다른 자리를, 서로 다른 힘으로, 서로 다른 때에 밀어서 공이 한 방향으로 굴러가는 모습입니다. (한약은 한 곳을 누르지 않습니다) 손 하나를 빼면 공이 그냥 조금 느려지는 것이 아니라, 굴러가는 방향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약재 하나를 놓을 때 보는 것
정리하면 저는 세 가지를 봅니다.
그 약재가 혼자 하는 일. 무엇을 붙잡고 무엇을 여는가.
옆에 있는 약재와의 관계. 함께 들어갔을 때 서로의 용출과 흡수와 분해를 어떻게 바꾸는가.
그 사람의 조건. 지금 드시는 약이 있는지, 몸의 상태가 어떤지.
세 번째가 특히 중요합니다. 같은 조합이라도 드시는 약이 있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대로 한약재가 약의 분해를 늦출 수 있고, 그러면 그 약의 농도가 올라갑니다. 드시는 약이 있으시면 꼭 말씀해 주십시오. 대개는 그대로 함께 드셔도 되지만, 그 판단을 제가 정보 없이 할 수는 없습니다.
약재 하나만 빼면 안 되겠느냐는 질문으로 시작했습니다.
답은 이렇습니다. 뺄 수 있습니다. 다만 그것은 하나를 덜어 내는 일이 아니라, 나머지 전부의 길이 함께 달라지는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 자리를 가볍게 옮기지 않습니다.
참고한 자료
- 꿀과 함께 쓰면 그 약재 성분의 혈중 곡선과 독성 계열의 비중이 달라진다는 것 — Frontiers in Pharmacology, 2025
- 사람에게 2주 동안 먹였을 때 약을 분해하는 효소들의 활성이 떨어졌다는 연구 — European Journal of Clinical Pharmacology, 2012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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