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당을 낮추는 노란 가루 — 베르베린 하나를 끝까지 따라가 봅니다
짧은 답
인터넷에서 '천연 당뇨약'이라며 팔리는 노란 가루가 있습니다. 흡수율이 1%도 되지 않는데 혈당이 떨어집니다. 장내세균이 열어 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러 곳에 강하게 달라붙는 바로 그 성질 때문에, 함께 먹은 다른 약의 농도를 올립니다. 알고 쓰는 것과 모르고 쓰는 것은 같은 성분이 아닙니다.
요즘 베르베린이라는 이름을 아시는 분이 부쩍 늘었습니다. 진료실에서도 먼저 물어보시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한약에서는 황련(黃連)이나 황백(黃柏) 같은 약재의 쓰고 노란 성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앞서 치자 한 가지를 끝까지 따라가 본 적이 있습니다. (장이 켜 주어야 작동하는 약) 오늘은 베르베린으로 같은 일을 해 보겠습니다.
흡수되지 않는데 혈당이 떨어집니다
베르베린을 입으로 먹으면 몸에 흡수되는 비율이 1%도 되지 않습니다. 거의 다 장을 그냥 통과해 버립니다.
여기서 대부분의 이야기가 멈춥니다. "흡수도 안 되는 게 무슨 약이냐"고요.
그런데 실제로는 혈당이 떨어집니다. 새로 진단된 2형 당뇨 환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베르베린의 혈당 강하 정도는 당뇨약(메트포르민)과 비슷했습니다. 이후 사람 대상 연구들을 모아 본 분석에서도 공복혈당과 당화혈색소가 내려가는 쪽으로 결과가 모였습니다.
흡수가 거의 안 되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이 모순이 이 글의 출발점입니다.
미리 말씀드립니다. 이것은 성분에 대한 연구 결과이지, 제가 당뇨를 한약으로 치료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당뇨는 주치의의 관리를 받으셔야 합니다.
답의 절반은 장에 있습니다
장에 사는 세균이 베르베린을 디하이드로베르베린이라는 형태로 바꿔 주면, 그때는 흡수율이 몇 배로 올라갑니다. 흡수된 뒤에는 다시 원래 형태로 돌아가 피를 타고 돕니다. 세균이 열쇠를 쥐고 있다는 점에서, 이 약도 그 사람의 장이 켜 주는 약입니다. (같은 한약인데 왜 사람마다 다르게 들을까)
나머지 절반은 더 흥미롭습니다. 베르베린은 피에 많이 들어가지 않아도 일을 합니다. 이 약이 일하는 자리 중 하나가 장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한 성분이 여러 축을 동시에 건드립니다
제가 이 성분에 관심을 두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베르베린은 세포의 연료 감지 스위치인 AMPK를 켭니다. 몸이 "연료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 켜지는 그 스위치이고, 켜지면 세포가 당을 더 끌어다 씁니다. 동시에 간이 당을 새로 만들어 내는 속도를 늦추고, 간이 콜레스테롤을 처리하는 수용체를 늘립니다. 그리고 장에서는 장내세균의 구성을 짧은사슬지방산이 늘어나는 쪽으로 바꿔 놓습니다.
한 가지 성분이 네 개의 축을 동시에 건드립니다. 이것이 왜 중요하냐면 — 대사증후군은 원래 한 축만 무너진 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혈당, 지질, 혈압, 염증, 장 상태가 서로 얽혀 함께 흔들립니다. 그런 상태를 되돌리려면 여러 축을 동시에 조금씩 미는 편이, 한 축을 세게 누르는 것보다 나을 때가 있습니다.
이것이 제가 말하는 환경을 바꾼다는 것입니다. 당 수치 하나를 억지로 끌어내리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습니다. 몸이 스스로 당을 다루는 힘을 되찾도록, 그 주변 환경을 함께 손보는 것입니다. (덜 먹는데 왜 안 빠질까 — 인슐린 저항성의 자리)
어디까지 확인되었나
흡수율이 낮다는 것, 장내세균이 이를 흡수 가능한 형태로 바꾼다는 것, 사람에게서 혈당과 지질이 내려간다는 것 — 여기까지는 확인된 자리입니다. 다만 사람 연구는 규모가 크지 않고, AMPK나 장내세균 쪽 이야기는 대부분 세포와 동물에서 확인된 것입니다.
여러 축을 함께 미는 약은 무엇이 무엇을 했는지 딱 잘라 가려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약은 앞으로 더 볼 자리가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씁니다
이 경로를 알기 때문에, 이런 성분을 다룰 때는 몇 가지를 반드시 확인합니다.
드시는 약을 전부 물어봅니다. 베르베린은 몸이 약을 분해하고 밀어내는 통로(CYP3A4 계열, P-당단백질)를 함께 붙잡습니다. 그 통로는 다른 여러 약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길이기도 해서, 함께 드시는 약의 농도가 올라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천연이라 약과 같이 먹어도 되겠지"는 이 성분에 관한 한 정확히 반대입니다. 혈당약을 드시는 분이라면 특히 미리 말씀해 주십시오.
양과 기간을 정하고, 혈당을 함께 봅니다. 많이 쓴다고 더 듣는 약이 아닙니다. 어느 선을 넘으면 이로움은 멈추고 속쓰림·설사 같은 부담만 올라갑니다. (센 약이 좋은 약일까) "좋아질 때까지 계속"은 계획이 아닙니다. (약을 언제 끊어야 하는가)
임신 가능성과 수유 여부를 확인합니다. 이 성분은 신생아의 황달과 관련해 조심스럽게 보는 자리가 있어, 임신 중·수유 중과 갓난아기에게는 권하지 않습니다.
이 성분이 몸의 여러 곳에 잘 달라붙는 그 성질에서, 이로움과 주의할 점이 함께 나옵니다. (약의 효과와 부작용은 같은 자리에서 나옵니다)
여기까지가 베르베린에 대해 지금 밝혀진 것입니다.
장이 열어 주어야 흡수되는 길이 있고, 흡수를 기다리지 않고 장에서 바로 일하는 길이 따로 있습니다. 순서가 아니라 두 갈래입니다. 노랗고 순해 보이는 가루 하나에 이만큼 구체적인 경로가 깔려 있습니다.
저는 이 경로를 보고 씁니다. 경로를 알면, 사람과 양과 기간을 정할 수 있습니다.
참고한 자료
- 2형 당뇨 환자에서 베르베린의 혈당 강하 효과가 메트포르민과 비슷했다는 임상 연구 — Metabolism, 2008
- 사람 대상 연구들을 모아 본 베르베린의 혈당 강하 효과 분석 — Frontiers in Pharmacology, 2022
- 장내세균이 베르베린을 흡수 가능한 형태로 바꿔 준다는 것 — Scientific Reports, 2015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진료가 필요하신 경우
이 글이 자기 얘기 같으셨습니까?
진료 시간을 바로 고르시거나, 오시기 전에 여쭙고 싶은 것을 먼저 보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