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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한약인데 왜 사람마다 다르게 들을까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글 · 의료 내용 확인 허지영 대표원장 · 한의학 병리학 박사

짧은 답

같은 한약인데 왜 저는 반응이 더딜까요? 장내 미생물이 일부 성분을 활성화하는 과정과 식사·수면·스트레스·최근 항생제 사용 같은 장 상태가 반응 차이에 관여할 수 있어 소화와 배변을 함께 살핍니다.

같은 처방을 드렸는데 어떤 분은 일주일 만에 달라졌다고 하시고, 어떤 분은 한 달이 지나도 별 반응이 없습니다. 같은 약, 같은 용량인데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체질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다만 저는 그 "체질"이라는 말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려 합니다. 그 상당 부분이 장(腸)에서 갈립니다.

한약은 먹은 그대로 작용하지 않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한약재의 유효 성분 상당수는 당(糖)이 붙어 있는 형태로 존재합니다. 이 상태로는 몸이 잘 쓰지 못합니다.

이 성분들은 위와 소장을 그냥 지나갑니다. 그러다 대장에 사는 미생물을 만나면서 비로소 당이 떨어져 나가고, 몸이 흡수할 수 있는 활성 형태로 바뀝니다.

말하자면 한약은 장내 미생물이 열쇠를 돌려 주어야 문이 열리는 약입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이 사실을 받아들이면 여러 현상이 자연스럽게 설명됩니다.

장이 좋지 않은 분에게는 좋은 약도 제 힘을 내지 못합니다. 열쇠를 돌려 줄 미생물이 충분하지 않거나 구성이 흐트러져 있으면, 성분은 활성화되지 못한 채 지나가 버립니다.

항생제를 최근에 오래 쓰신 분은 반응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항생제는 병을 일으키는 균만 골라 없애지 않습니다.

같은 사람이라도 시기에 따라 반응이 다릅니다. 장 상태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식사, 스트레스, 수면에 따라 움직입니다.

그래서 저는 늘 소화를 먼저 묻습니다

허리가 아파서 오신 분께, 잠이 안 와서 오신 분께, 손발이 차서 오신 분께 저는 거의 예외 없이 소화와 배변을 묻습니다.

처음 오신 분들은 의아해하십니다. "허리 때문에 왔는데 왜 대변 얘기를 하시죠?"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약이 작동할 조건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장이 나쁜 상태에서 아무리 정교한 처방을 설계해도, 약은 제 몫을 하지 못합니다. 그럴 때는 순서를 바꿔야 합니다. 목표한 치료로 곧장 가는 대신, 장을 먼저 정돈하는 처방을 앞에 둡니다.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지름길입니다.

둘째, 장 자체가 원인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장은 몸에서 면역세포가 가장 많이 모여 있는 곳이고, 자율신경과 촘촘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장이 흔들리면 소화만 흔들리지 않습니다. 면역과 잠, 기분까지 함께 움직입니다.

그럼 유산균을 먹으면 되나요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만 균을 넣는 것보다 그 균이 살 만한 환경을 만드는 쪽이 오래 갑니다. 무엇을 먹는지, 소화관이 얼마나 잘 움직이는지, 자율신경이 안정되어 있는지가 함께 작용합니다.

정리하면

  • 한약의 유효 성분은 상당수가 장내 미생물의 대사를 거쳐야 활성화됩니다
  • 그래서 장의 상태가 약효를 좌우합니다
  • 반응이 더딘 것이 약이 나빠서가 아니라, 약이 깨어날 조건이 부족해서일 수 있습니다
  • 그래서 저는 어떤 증상으로 오시든 소화와 장을 먼저 살핍니다

약이 아니라 순서가 문제일 수 있습니다

이 설명은 연구로 상당 부분 뒷받침되지만, 사람마다의 반응 차이를 전부 설명하지는 못합니다. 유전적 대사 능력, 복용 시간, 병의 경과 시기도 함께 작용합니다.

다만 반응이 더딜 때 "이 약은 나한테 안 맞나 보다"라고 서둘러 결론 내리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약이 문제가 아니라 순서가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 순서를 함께 찾는 것이 제 일입니다.

참고한 연구

이 글의 핵심 — 한약 유효 성분의 상당수가 장내 미생물의 대사를 거쳐야 활성화된다는 설명 — 은 다음 리뷰 논문들로 뒷받침됩니다.

  • 장내 미생물의 효소가 천연물 성분을 활성 대사물로 바꾸는 전반적 원리: Potential roles of gut microbes in biotransformation of natural products: An overview, Frontiers in Microbiology (2022). 원문 보기
  • 대표 사례로, 인삼 사포닌(진세노사이드)이 장내 세균에 의해 흡수 가능한 활성 형태(compound K)로 전환되는 과정: A review of biotransformation and pharmacology of ginsenoside compound K, Fitoterapia (2015). 원문 보기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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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허지영 대표원장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 서울 광진구 자양동 · 구의역 4번 출구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단독 저서 《몸을 돌려놓는 한약》 · 《검사 밖의 몸》 · 《과학의 눈으로 읽는 한의학》 · 직접 쓴 글 284편

이력 펼쳐보기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병리학(질병의 기전)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같은 대학 본초학 교실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약물을 연구했습니다. 질병과 약물을 양쪽에서 연구한 이력이 진료의 바탕입니다 — "이 약이 왜 이 병에 듣는가"를 병리와 약리 양쪽 언어로 설명합니다.

몸을 다층으로 보고, 환경 변화에 적응해 돌아오는 힘(회복 탄력성)을 살피며, 적응이 안 될 때는 몸 안의 환경 쪽을 손대는 것 — 이 세 관점이 진료의 바탕입니다. 자율신경과 만성·난치질환, 체형·구조의 문제를 현대과학의 언어로 설명하고, 원인에 맞는 치료를 제안합니다. 한의사를 대상으로 처방과 임상 강의를 10년 이상 해 왔으며, 저서 《한의사들이 읽어주는 한의학》 공동 저자입니다. 이 책은 2018년 하반기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되었습니다(기술과학 분야 15종에 포함).

단독 저서로 《과학의 눈으로 읽는 한의학》(2026), 《검사 밖의 몸》(2026), 《몸을 돌려놓는 한약》(2026) 세 권을 썼습니다. 첫 책은 한약이 몸 안에서 어떤 길을 지나는지를 성분과 기전의 이름까지 따라가며 설명했고, 두 번째 책은 검사는 정상이라는데 여전히 불편한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여섯 갈래로 나누어 살폈습니다. 세 번째 책은 그 몸이 어디서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는지를 자율신경, 만성 대사성 질환, 만성 통증, 여성의 몸, 아이와 청소년, 노년기, 낫지 않는 병의 일곱 갈래로 봅니다.

이 글을 쓴 곳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은 서울 광진구 자양동(자양로 46, 오띠모빌딩 2층 201호)에 있습니다. 구의역 4번 출구에서 걸어서 7분입니다. 자율신경·만성통증·난치질환처럼 검사에서 잘 잡히지 않는 불편을 주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