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는 병이 아니라 여력의 문제입니다
짧은 답
「노화는 병이 아니다」 — 그러니 안심해도 된다는 뜻일까요, 더 볼 것도 없다는 뜻일까요? 병이 아니라는 말과 아무 일도 없다는 말은 다릅니다. 그 사이에 있는 것이 여력입니다. 물음이 하나 바뀝니다 — 어디가 잘못됐는가에서, 지금 남은 것이 무엇에 먼저 들어가고 있는가로. 시작한 때를 짚을 수 있는 변화와 기운·입맛이 떨어진 것은 나이로 넘기기 전에 재 보는 일이 앞섭니다.
노화는 병이 아니라는 말이 두 가지 뜻으로 쓰입니다.
한쪽은 걱정하실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검사에서 나온 것이 없고 이름 붙일 것도 없다는 뜻이니, 그때는 이 말이 맞습니다. 다른 한쪽은 그러니 더 볼 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같은 문장이 여기서는 설명이 되고 저기서는 마침표가 됩니다.
병이 아니라는 말과 아무 일도 없다는 말은 다릅니다. 그 사이에 있는 것이 여력입니다.
병에는 짚을 곳이 있습니다
병을 볼 때 묻는 말은 대개 정해져 있습니다. 어디인가, 언제부터인가.
이 둘에 답이 나오면 그다음이 따라 나옵니다. 그곳을 손보면 되고, 손본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 다시 재 보면 됩니다. 의학이 오래 힘을 써 온 방식이고, 이 방식으로 고쳐 낸 것이 대단히 많습니다.
나이가 만드는 변화 앞에서는 그 물음에 답이 잘 나오지 않습니다. 어디냐고 물으면 한 군데를 대기가 어렵습니다. 질병관리청이 정리해 둔 노화 설명에도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달라지는 것은 특정 부위가 아니라 전반적인 신체 기능이라고.
심장이든 폐든 신장이든, 나눠서 재 볼 수 있는 곳을 각각 따라가 보면 30살 무렵부터 대부분이 조금씩 낮아집니다. 그리고 그 속도가 사람마다 다르고, 한 사람 안에서도 곳마다 다릅니다. 그래서 같은 나이라도 어디가 얼마나 남았는지는 사람마다 다르게 놓입니다.
한 곳을 대라고 하면 댈 수가 없는데, 지내는 하루는 예전과 다릅니다.
묻는 말이 바뀝니다
한 곳을 찾아 손보는 방식은 짚을 곳이 있을 때 힘을 씁니다. 나이가 드셨다고 해서 이 방식을 안 쓸 이유가 없습니다. 재 봐서 나온 것이 있으면 거기서 다룹니다.
다만 여러 곳의 여력이 함께 줄어든 상태에서는 이 방식이 잘 안 듣습니다. 하나를 골라 크게 손봐도 나머지는 그대로 있고, 하루를 지내는 데에는 그 나머지가 다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볼 것이 없어지지는 않습니다. 묻는 말이 하나 바뀝니다.
남은 것은 지금도 어딘가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줄어든 나머지가 가만히 놓여 있지는 않습니다. 몸은 그것을 아껴 두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밤에 자주 깨는 날이 이어지면, 자는 동안 해 두는 일이 덜 된 채로 아침이 옵니다. 오래 끌고 있는 통증이 하나 있으면 그것을 견디는 데에 하루 치가 먼저 들어갑니다. 식사 사이가 오래 벌어져 있으면 그 사이를 버티는 데에 먼저 들어갑니다.
그래서 같은 사람이 같은 하루를 지내는데도 어떤 철에는 그 하루가 그럭저럭 지나가고, 어떤 철에는 그 하루가 벅찹니다. 그사이에 나이를 더 드신 것이 아닙니다. 먼저 들어가는 데가 달라진 것입니다.
나이가 만든 몫은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크게 들어가고 있는 데는 나이 하나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물음이 옮겨 갑니다. 어디가 잘못됐는가에서, 지금 남은 것이 무엇에 먼저 들어가고 있는가로. 피곤할 때가 몸을 살펴야 할 때라는 이야기와 이어집니다.
먼저 다른 곳으로
나이가 든다고 병이 비켜 가지는 않습니다. 나이라는 답이 이미 나와 있으면 그 뒤를 잘 묻지 않게 됩니다.
시작한 때를 댈 수 있을 때. 몇 월부터, 무슨 일이 있고 나서부터 — 이렇게 짚을 수 있는 변화는 나이만으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노화는 서서히 오지만 병은 갑자기 오기도 합니다.
기운이 없고 입맛이 없을 때. 이야기만 들어서는 알 수 없고 재 봐야 아는 것들이 여기 몰려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나이로 넘기기 전에 재 보는 일이 앞섭니다.
나이가 든 몸에서는 물음이 조금 달라져야 대답이 나옵니다. 지금 남은 것이 무엇에 먼저 들어가고 있는가.
노화가 병이 아니라는 말은 그대로 두어도 됩니다. 다만 그 말이 마침표로 쓰이면 그 뒤를 묻지 않게 됩니다. 얼마가 남았는지는 재 보기가 어렵지만, 그것이 어디로 먼저 가는지는 그 사람 안에서 볼 수 있습니다.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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