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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지키려는 것은 수치 하나가 아닙니다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글 · 의료 내용 확인 허지영 대표원장 · 한의학 병리학 박사

짧은 답

설명을 다 듣고 일어나기 직전에 물으시는 분이 많습니다 — 「그래서 이 약이 제 병에 왜 필요한 겁니까?」 그 답을 하려면 먼저 정상이 무엇인지부터 말해야 합니다. 몸은 수치 하나를 딱 맞춰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오르내리면서 범위 안에 머무르고, 그 범위는 사람마다·때마다 다르며 계속 움직입니다. 문제는 오르내림이 아니라 나간 뒤 돌아오는 힘입니다. 몸이 갑자기 달라졌다면 검사가 먼저입니다.

설명을 다 듣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나기 직전에 이렇게 물으시는 분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 약이 제 병에 필요한 겁니까."

저는 이 질문을 오래 생각했습니다. 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검사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못 보는지는 그동안 여러 글에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그다음이 남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이 글은 그 질문에 답하려고 씁니다. 그러려면 먼저 짚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정상이란 무엇인가.

몸은 수치 하나를 지키지 않습니다

평균대 위에 올라선 사람이 있습니다. 잘 있는 사람은 가만히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 사람의 몸은 끊임없이 좌우로 기울었다 돌아오기를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흔들리지 않아서 잘 서 있는 것이 아니라, 기울 때마다 되돌아오기 때문에 서 있는 것입니다.

몸의 조절도 이와 같습니다.

체온을 36.5도에 딱 맞춘다고들 말하지만, 실제 체온은 하루 동안 오르내리고, 몸이 지키는 기준 자체가 시기에 따라 옮겨 앉습니다. 혈당도, 혈압도, 호르몬도 그렇습니다. 딱 맞추는 것이 아니라 오르내리면서 어떤 범위 안에 머무릅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몸은 컴퓨터처럼 켜고 끄는 방식으로 조절할 수 없습니다. 몸을 이루는 세포가 너무 많고, 그 많은 세포에 동시에 명령을 내리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몸은 방향과 속도로 조절합니다. 이쪽으로, 이만큼 빠르게. 그러면 수치는 목표를 지나치기도 하고 못 미치기도 하면서 파동을 그리며 오르내립니다.

그래서 정상은 점이 아니라 범위입니다. 하나의 수치로 딱 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병은 무엇인가

수치가 잠깐 범위 밖으로 나가는 일은 늘 있습니다. 계단을 오르면 심박이 오르고, 밥을 먹으면 혈당이 오릅니다. 그것을 병이라 하지 않습니다. 곧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제가 주로 보는 문제는, 나간 뒤 돌아오는 힘이 약해진 곳입니다.

평균대 위에서 기우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닙니다. 기울었는데 되돌아오지 못할 때 떨어집니다. 몸도 그렇습니다. 오르내림 자체보다 범위를 벗어난 뒤 얼마나 잘 돌아오는지를 함께 봐야 합니다.

이 되돌아오는 힘, 회복 탄력성이 제 진료의 축입니다. 고무줄로 치면 늘어나는 성질이 아니라 놓았을 때 제자리로 돌아오는 성질입니다.

그런데 그 범위는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사람마다 다릅니다. 같은 수치가 이분에게는 범위 안이고 저분에게는 밖입니다. 사람마다 지키는 기준이 다릅니다. 건강한 사람들에게서 갑상선 관련 수치 넷을 거듭 재 보니, 한 사람 안에서 오르내리는 범위는 집단 기준의 절반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 그래서 집단 기준 안에 있어도 그 사람에게는 평소와 다를 수 있습니다.
때마다 다릅니다. 나이에 따라, 호르몬에 따라, 계절에 따라, 그날의 형편에 따라 범위가 달라집니다.
그리고 계속 움직입니다. 한 번 정해지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의 몸을 이야기할 때 어른의 자를 그대로 대면 안 된다고 말씀드리곤 합니다. 같은 아이 안에서도 두 해 사이에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건강검진 결과의 「정상 범위」가 실제로 뜻하는 것에서 그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것이 아이만의 일이 아닙니다. 어른의 몸에서도 범위는 계속 움직이고 있습니다.

몸에는 적응이라는 힘이 있습니다. 같은 자극이 오래 반복되면 몸은 거기에 맞춰 자기를 바꿉니다. 신경과 면역에서 특히 잘 드러납니다. 밤에 깨어 일하는 것은 원래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데, 야간 근무를 이십 년 넘게 하시고도 별 탈 없는 분들이 실제로 계십니다. 몸이 그 생활에 맞게 범위를 넓혀 놓은 것입니다.

이렇게 물으시는 분이 있었습니다. 일 때문에 첫 끼를 늦은 오후에, 다음 끼를 밤늦게 드시는 생활을 삼십 년 가까이 해 오셨습니다. 이래도 괜찮은 것이냐고 물으셨습니다.

그 간격을 오래 견뎌 왔다는 뜻입니다. 몸이 어느 정도 적응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이런 말씀을 덧붙이셨습니다. 요즘은 예전보다 배가 고픈 것이 힘들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적응은 진화가 아닙니다. 몸의 바탕이 바뀐 것이 아니라 버틸 수 있는 범위를 넓혀 둔 것뿐입니다. 그래서 그 범위를 유지하는 힘이 약해지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나이가 들면 에너지를 저장하고 꺼내 쓰는 능력이 조금씩 떨어집니다. 간에 당을 글리코겐으로 쟁여 두는 일도, 그것을 필요할 때 풀어내는 일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근육이 줄어드는 것도 여기 얹힙니다. 근육은 힘을 내는 곳이기도 하지만 에너지를 쌓아 두는 창고이기도 해서, 근육이 줄면 창고가 줄어듭니다.

생활은 그대로인데 창고가 줄어든 것입니다. 삼십 년을 버틴 것은 창고가 넉넉했기 때문이고, 창고가 줄어드니 같은 간격이 길게 느껴집니다. 같은 일이 다르게 느껴지고, 몸이 다르게 반응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몸의 상태에 따라 대응해야 합니다. 몸이 하는 얘기를 듣고 맞춰 주셔야 합니다.

그 습관을 당장 버리시라는 말도, 계속 그러셔도 된다는 말도 아닙니다. 지금 이 몸이 어디까지 되는지를 보고 거기에 맞추자는 뜻입니다. 어제 되던 것이 오늘도 된다는 법은 없고, 오늘 안 되는 것이 내일도 안 된다는 법도 없습니다.

이 이야기를 저는 운동에서도 똑같이 합니다.

몸에 좋은 일이니 많이 할수록 좋으리라 여기기 쉽습니다. 그런데 운동을 과하게 하시다 탈이 나서 오시는 분이 진료실에는 참 많습니다. 마음먹은 목표가 있고, 예전에 하던 양이 있고, 그것을 지키려고 오늘의 몸을 밀어붙이는 것입니다. 운동만이 아닙니다. 식사 시간도, 자는 시간도, 하루의 순서도 그렇습니다.

의지와 목표를 밀어붙이는 대신 몸의 상황에 맞추는 편이 낫다고 저는 말씀드립니다. 더 하라는 뜻도, 덜 하라는 뜻도 아닙니다. 맞추라는 뜻입니다. 범위가 넓은 날에는 넓은 만큼 쓰고, 좁아진 날에는 좁은 만큼 씁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결국 그 범위를 지키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가 진료실에서 하는 일

이렇게 놓고 보면 제가 하는 일이 분명해집니다.

어느 지점에서 되돌아오지 못하고 있는지를 찾는 것.

같은 두통이라도 되돌아오지 못하는 곳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분은 명치의 압력이 횡격막을 눌러서, 어떤 분은 장이 보내는 신호가 계속 올라와서, 어떤 분은 몸이 급하게 오르내려서 그렇습니다. 증상의 이름은 같아도 짚을 곳은 다릅니다. 반대로, 이름이 다른 두 증상이 한 곳에서 갈라져 나온 것일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증상 이름만 좇지 않습니다. 그 증상을 만들고 있는 조건을 함께 봅니다.

그 일을 한약이 하는 방식

한 가지 수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증상에는 짚을 곳도 하나가 아닙니다. 저는 여러 조건을 함께 살피고, 그중 지금 이 사람에게 더 큰 몫을 찾습니다.

한약도 그런 판단에 맞춰 씁니다. 여러 성분이 서로 다른 부위와 시간에 작용한다는 특성을 이용하되, 모든 사람에게 같은 방향을 정해 두지는 않습니다. 되돌리는 일은 몸이 하고, 저는 그 일을 방해하는 조건을 줄이는 쪽을 찾습니다.

이것이 제가 실제로 하는 일과 정확히 맞습니다. 신경이 예민해진 분께 신경을 눌러 재우는 쪽으로만 가지 않습니다. 그 신경을 계속 건드리고 있는 곳이 어디인지 먼저 찾습니다. 거기가 풀리면 신호는 저절로 잦아듭니다.

왜 이 이야기를 굳이 쓰는가

저보다 진료를 잘하는 분도 많고 저보다 환자를 많이 보시는 분도 많습니다.

다만 관점과 이론을 내놓는 사람이 있어야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이 함께 한 걸음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래야 현대의학을 하시는 분들도 한의학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말을 쓰더라도,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건네줄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저는 처방을 알려 드리지 않습니다. 약은 사람마다 다르게 쓰는 것이라 글로 옮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신 제가 무엇을 보고 어디에 손을 대는지를 말씀드립니다. 그 이야기는 나눌수록 값어치가 커진다고 믿습니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그래서 이 약이 제 병에 왜 필요한 겁니까."

이제 이렇게 답합니다.

지금 몸의 수치만 볼 일이 아닙니다. 그 수치가 왜 흔들리는지, 회복을 늦추는 조건이 무엇인지까지 보아야 합니다. 저는 확인된 조건을 겨눕니다.

이어지는 글들은 대개 증상 하나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나 하는 이야기는 같습니다. 그 이름 뒤에 어떤 조건들이 함께 놓여 있는가.


몸이 갑자기 달라졌을 때 — 전에 없던 증상이 갑자기 생겼거나, 쉬어도 가라앉지 않거나, 밤에 깨울 정도이거나, 열이나 체중 변화가 함께 온다면 검사를 먼저 받으시는 편이 낫습니다. 되돌아오는 힘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치료해야 할 질환이나 손상이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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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허지영 대표원장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 서울 광진구 자양동 · 구의역 4번 출구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단독 저서 《몸을 돌려놓는 한약》 · 《검사 밖의 몸》 · 《과학의 눈으로 읽는 한의학》 · 직접 쓴 글 284편

이력 펼쳐보기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병리학(질병의 기전)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같은 대학 본초학 교실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약물을 연구했습니다. 질병과 약물을 양쪽에서 연구한 이력이 진료의 바탕입니다 — "이 약이 왜 이 병에 듣는가"를 병리와 약리 양쪽 언어로 설명합니다.

몸을 다층으로 보고, 환경 변화에 적응해 돌아오는 힘(회복 탄력성)을 살피며, 적응이 안 될 때는 몸 안의 환경 쪽을 손대는 것 — 이 세 관점이 진료의 바탕입니다. 자율신경과 만성·난치질환, 체형·구조의 문제를 현대과학의 언어로 설명하고, 원인에 맞는 치료를 제안합니다. 한의사를 대상으로 처방과 임상 강의를 10년 이상 해 왔으며, 저서 《한의사들이 읽어주는 한의학》 공동 저자입니다. 이 책은 2018년 하반기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되었습니다(기술과학 분야 15종에 포함).

단독 저서로 《과학의 눈으로 읽는 한의학》(2026), 《검사 밖의 몸》(2026), 《몸을 돌려놓는 한약》(2026) 세 권을 썼습니다. 첫 책은 한약이 몸 안에서 어떤 길을 지나는지를 성분과 기전의 이름까지 따라가며 설명했고, 두 번째 책은 검사는 정상이라는데 여전히 불편한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여섯 갈래로 나누어 살폈습니다. 세 번째 책은 그 몸이 어디서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는지를 자율신경, 만성 대사성 질환, 만성 통증, 여성의 몸, 아이와 청소년, 노년기, 낫지 않는 병의 일곱 갈래로 봅니다.

이 글을 쓴 곳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은 서울 광진구 자양동(자양로 46, 오띠모빌딩 2층 201호)에 있습니다. 구의역 4번 출구에서 걸어서 7분입니다. 자율신경·만성통증·난치질환처럼 검사에서 잘 잡히지 않는 불편을 주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