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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은 과학일까 — 한약을 성분·혈류·미생물로 설명한다면

〈약이 몸에서 하는 일〉 · 10편 중 1번째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글 · 의료 내용 확인 허지영 대표원장 · 한의학 병리학 박사

짧은 답

한약은 몸에서 어떻게 작용하나요? 여러 성분이 혈류·신경·체액과 장내 미생물 대사 등 서로 다른 경로로 몸에 닿아, 같은 약도 몸 상태에 따라 반응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한약이 왜 몸에 듣는지" 설명을 제대로 들어본 적 있으신가요.

많은 분이 한약을 "기를 보한다", "몸을 따뜻하게 한다" 같은 말로만 접합니다. 그 표현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저는 한 걸음 더 들어가 한약이 몸에서 실제로 무슨 일을 하는지 — 성분이 어떻게 작용하고, 혈류와 압력을 어떻게 바꾸며, 어디서 흡수되는지 — 를 현대 생리학과 약리학의 언어로 설명하려 합니다. 이 글은 그 관점을 정리한 것입니다.

한약은 하나의 약이 아니라, 성분의 묶음입니다

한약재 하나에는 수십 가지 약리 성분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처방을 "무슨 약을 쓸까"가 아니라 "이 사람의 몸에서 어떤 작용이 필요한가"로 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성분은 좁아진 혈관을 이완시켜 순환을 돕고, 어떤 성분은 한쪽에 고인 체액을 빠지게 하며, 어떤 성분은 과하게 흥분한 신경을 가라앉힙니다. 이 작용들을 혈류·압력·신경·전해질의 관점에서 읽고, 지금 그 사람에게 무엇이 막혀 있고 무엇이 넘치는지에 맞춰 성분을 조합합니다.

왜 "장(腸)"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한약이 몸에 닿는 길은 하나가 아닙니다. 어떤 성분은 세포를 둘러싼 기름막을 그냥 통과하고, 어떤 성분은 장 점막의 문을 그 자리에서 두드리고, 어떤 신호는 장의 신경을 타고 혈액을 거치지 않은 채 곧장 중추로 올라갑니다. 길마다 도착하는 때도 다릅니다.

그중 한 길이 잘 알려져 있지 않은데, 이렇습니다. 한약 성분의 상당수는 위에서 바로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대장의 미생물을 거쳐 몸이 쓸 수 있는 형태로 바뀐 뒤에야 흡수됩니다.

이 말은 곧, 같은 약을 먹어도 장의 상태에 따라 효과가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장이 나쁜 사람에게는 좋은 약도 제 힘을 내지 못합니다. 제가 통증이든 자율신경이든 대사든, 진료할 때 소화와 장 상태를 늘 함께 살피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다만 이건 여러 길 중 하나입니다. 이 길 하나로 한약을 다 설명하면 입구가 하나뿐인 약이 되어 버립니다. 한약은 성분표만으로 설명되지 않고, 그 성분들이 저마다 다른 길로, 저마다 다른 때에 몸에 닿는다는 것까지 봐야 합니다. (한약은 무엇을 하는가)

몸을 하나의 순환하는 흐름으로 봅니다

저는 몸을 혈액과 체액이 압력의 차이로 흐르는 하나의 순환계로 이해합니다. 많은 만성 증상은 어느 장기가 망가져서가 아니라, 이 흐름의 조절이 흐트러져서 생깁니다.

  • 말초 혈관이 좁아지면 심장은 더 높은 압력으로 밀어내야 하고, 이것이 혈압으로 나타납니다.
  • 자율신경 조절이 흔들리면 심박·소화·수면·체온이 동시에 삐끗합니다.
  • 한쪽에 체액이 정체되면 몸이 무겁고 붓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증상 하나하나를 따로 누르기보다, 그 증상들을 함께 만들어낸 흐름의 문제를 찾아 되돌리려 합니다. 한의학의 오랜 통찰과 현대 생리학이 이 지점에서 만난다고 봅니다.

그래서 같은 병도 처방이 다릅니다

이렇게 보면 "불면약", "소화약" 같은 정해진 한 가지 처방을 모두에게 드리는 일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같은 불면이라도 어떤 분은 과열된 신경을 식혀야 하고, 어떤 분은 소진된 회복력을 채워야 합니다. 원인이 다르면 성분도, 조합도 달라집니다. 그 사람의 몸을 읽고 그에 맞춰 설계하는 것 — 제가 생각하는 한약 진료는 그런 것입니다.

왜 이렇게까지 설명하려 하나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환자분이 자기 몸을 이해할 때 회복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왜 이 증상이 생겼고 왜 이 약을 쓰는지 납득이 되면, 치료 과정과 생활 관리를 스스로 이어갈 수 있습니다.

둘째, 저는 오랜 시간 한약 하나하나를 성분과 작용의 수준에서 공부해 왔고, 그 공부가 진료의 근거가 되기를 바랍니다. 한의학을 옛 언어 안에만 두지 않고 현대과학의 언어로 다시 풀어내는 일 — 그것이 환자분이 이해하실 수 있는 진료를 드리는 길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한의학은 과학일까요

이 물음은 옛것이냐 새것이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예전 의가들이 몸을 오래 들여다보고 얻은 것을, 지금은 성분과 경로의 이름까지 따라가며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그 둘을 같은 자리에 놓고 읽는 것입니다.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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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허지영 대표원장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 서울 광진구 자양동 · 구의역 4번 출구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단독 저서 《몸을 돌려놓는 한약》 · 《검사 밖의 몸》 · 《과학의 눈으로 읽는 한의학》 · 직접 쓴 글 284편

이력 펼쳐보기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병리학(질병의 기전)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같은 대학 본초학 교실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약물을 연구했습니다. 질병과 약물을 양쪽에서 연구한 이력이 진료의 바탕입니다 — "이 약이 왜 이 병에 듣는가"를 병리와 약리 양쪽 언어로 설명합니다.

몸을 다층으로 보고, 환경 변화에 적응해 돌아오는 힘(회복 탄력성)을 살피며, 적응이 안 될 때는 몸 안의 환경 쪽을 손대는 것 — 이 세 관점이 진료의 바탕입니다. 자율신경과 만성·난치질환, 체형·구조의 문제를 현대과학의 언어로 설명하고, 원인에 맞는 치료를 제안합니다. 한의사를 대상으로 처방과 임상 강의를 10년 이상 해 왔으며, 저서 《한의사들이 읽어주는 한의학》 공동 저자입니다. 이 책은 2018년 하반기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되었습니다(기술과학 분야 15종에 포함).

단독 저서로 《과학의 눈으로 읽는 한의학》(2026), 《검사 밖의 몸》(2026), 《몸을 돌려놓는 한약》(2026) 세 권을 썼습니다. 첫 책은 한약이 몸 안에서 어떤 길을 지나는지를 성분과 기전의 이름까지 따라가며 설명했고, 두 번째 책은 검사는 정상이라는데 여전히 불편한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여섯 갈래로 나누어 살폈습니다. 세 번째 책은 그 몸이 어디서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는지를 자율신경, 만성 대사성 질환, 만성 통증, 여성의 몸, 아이와 청소년, 노년기, 낫지 않는 병의 일곱 갈래로 봅니다.

이 글을 쓴 곳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은 서울 광진구 자양동(자양로 46, 오띠모빌딩 2층 201호)에 있습니다. 구의역 4번 출구에서 걸어서 7분입니다. 자율신경·만성통증·난치질환처럼 검사에서 잘 잡히지 않는 불편을 주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