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돌아오지 못하는지를 찾습니다
짧은 답
두근거림, 식사, 오래된 통증, 생리와 갱년기, 아이의 몸, 나이 드는 몸, 끝나지 않은 병 — 갈래는 달라도 멈춰 선 곳은 늘 같았습니다.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서였습니다. 그 힘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좋은 날에는 안 보이고 나쁜 날에 드러납니다. 그렇다면 그것을 가장 먼저 아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검사지가 아니라, 그 하루를 지낸 본인입니다.
두근거림, 식사, 오래된 통증, 생리와 갱년기, 아이의 몸, 나이 드는 몸, 끝나지 않은 병.
갈래를 이렇게 나누어 이야기해 온 것은 몸이 그렇게 나뉘어 있어서가 아닙니다. 한 번에 다 말하면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갈래를 다 지나고 되짚어 보니, 갈래마다 가리키는 곳이 늘 비슷했습니다. 잠이 안 오는 것이 아니라 잠들었다가 다시 잠이 안정되지 못하는 것, 식사를 거른 것이 아니라 거르고 난 뒤 원래대로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진 것, 굳은 것이 아니라 굳은 뒤 다시 부드러워지지 않는 것.
나가는 길이 아니라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나가는 일은 원래 늘 있습니다
몸 안의 수치는 하루에도 여러 번 오르내립니다. 밥을 먹으면 혈당이 오르고, 계단을 오르면 심장이 빨라지고, 찬 데 나가면 손끝이 차가워집니다. 이건 고장이 아니라 몸이 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수치가 한 번 벗어났다는 사실 자체는 별로 말해 주는 것이 없습니다. 열이 나는 일과 열이 안 떨어지는 일이 다른 것처럼, 벗어났다가 돌아오는 것과 벗어난 채로 있는 것은 다릅니다.
제가 되풀이해 물어 온 것이 그것입니다. 지금 수치가 정상 범위를 벗어나 있는가가 아니라, 벗어났다가 얼마나 돌아왔는가. 몸이 지키려는 것은 수치 하나가 아닙니다에서 시작한 물음입니다.
좋은 날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회복 탄력성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잘 지낸 날에 알기 어렵습니다. 여유가 있는 날에는 어지간한 일을 몸이 조용히 처리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늦게 자도 다음 날 티가 안 나고, 한 끼를 걸러도 그냥 지나갑니다.
그 범위가 좁아졌다는 것은 대개 나쁜 날에 드러납니다. 예전 같으면 하루면 지나갔을 일이 사흘을 갑니다. 같은 일을 겪었는데 회복이 다릅니다. 그리고 그 차이를 겪는 사람은 진료실에 있지 않습니다. 그 하루를 지낸 본인입니다.
검사지에는 그날의 수치가 한 줄 남습니다. 하지만 그 수치가 며칠 만에 정상 범위로 돌아왔는지는 적히지 않습니다. 그건 잰 사람이 아니라 지낸 사람이 압니다.
그래서 남는 것은 답이 아닙니다
이 이야기들이 남기려 한 것은 증상마다의 답이 아닙니다. 자기 몸에서 무엇을 눈여겨보아야 하는지에 가깝습니다.
언제부터였는지. 무엇과 같이 움직이는지. 나빠졌다가 돌아오는 데 얼마가 걸리는지. 예전에는 얼마였는지.
이 네 가지는 어느 검사에도 항목으로 없습니다. 그런데 진료실에서 가장 많이 여쭙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 몸을 지나온 사람만 알기 때문입니다.
찾는 일은 이미 시작되어 있습니다
「몸을 돌려놓는 한약」이라고 적어 놓으면 한약이 몸을 끌고 돌아오는 것처럼 읽힙니다. 제가 말씀드려 온 것은 그 한 겹 아래입니다. 돌아오는 일은 몸이 합니다. 한약은 그 일을 막고 있는 조건을 줄여, 몸이 제 힘으로 돌아올 자리를 냅니다.
어느 지점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지, 그 실마리는 대부분 진료실 밖에서 이미 지나갔습니다. 지난달 유난히 길게 갔던 감기, 올해 들어 달라진 아침의 첫 삼십 분, 작년까지는 없던 저녁의 어떤 시간. 그때는 그냥 지나간 일이었지만, 지나간 것이 아니라 기록되지 않았을 뿐입니다.
진료실에서 하는 일은 그 실마리를 처음부터 만드는 것이 아니라, 흩어져 있는 것을 한자리에 놓고 어느 고리를 먼저 끊을지 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실마리를 가진 쪽이 그것을 실마리로 알아보아야 합니다.
이 글들을 여기까지 쓴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무엇을 겨누는지 말해 두면, 같은 증상을 겪는 분들도 자기 몸에서 그 조건을 알아볼 수 있게 됩니다.
설명은 바뀝니다
몸에 벌어지는 일을 여러 번 설명했습니다. 그 설명은 지금 확인된 만큼입니다. 왜 그렇다고 설명하는 부분은 더 정확한 진단법과 더 좋은 이론이 나오면 바뀝니다.
바뀌지 않는 것이 따로 있습니다. 어느 아침에 배가 아팠는지, 무엇을 하고 나서 며칠을 앓았는지, 예전에는 얼마 만에 돌아왔는지. 겪은 일은 설명이 바뀌어도 그대로 남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둘을 갈라 둡니다. 겪으신 것은 그대로 받습니다. 설명이 맞지 않으면 고칠 것은 설명입니다.
검사에서 아무것도 안 나왔다는 말도 설명 쪽에 놓입니다. 그것은 찾을 것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그 검사가 재는 층에는 없었다는 뜻입니다. 다음에 어디를 볼지 정하는 데에 그것도 쓰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여기에 처방을 담지 않았습니다. 약은 사람마다 다르게 쓰는 것이라 글로 옮길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대신 이렇게 적어 두었습니다. 이름이 무엇이든, 그 이름 뒤에 어떤 조건들이 함께 놓여 있는가.
그 조건 가운데 어떤 것은 바꿀 수 있고 어떤 것은 바꿀 수 없습니다. 바꿀 수 없는 것을 붙들고 있으면 시간이 갑니다. 바꿀 수 있는 것을 모르고 지나가도 시간이 갑니다.
어느 쪽인지를 가르는 일은, 지금 몸에서 어디가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지를 찾는 데서 시작합니다.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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