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이 안 빠지는 게 의지 문제가 아닌 이유
"먹는 것도 줄였고 운동도 했는데 안 빠져요. 제가 의지가 약한가 봐요."
이 말씀을 하실 때 대개 목소리가 작아지십니다. 몇 년째 그런 말을 들어 오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마음도 내 마음대로 안 됩니다
기분이 안 좋을 때, 마음먹고 기분을 좋게 만들 수 있으십니까.
안 됩니다. 아무리 애써도 안 됩니다. 그런데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저절로 좋아집니다.
마음은 명령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상황이 만들어지면 움직입니다.
몸도 똑같습니다. 의지로 대사를 빠르게 만들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몸이 잘 돌아갈 상황을 만들어 주면, 에너지도 팍팍 쓰고 살도 빠집니다.
그러니 안 빠지는 것은 의지가 약해서가 아닙니다. 몸이 아직 그럴 상황이 아닌 겁니다.
대사는 여러 조건이 함께 정합니다
몸이 에너지를 얼마나 쓸지는 한 가지가 정하지 않습니다.
잠을 얼마나 잤는지, 근육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장이 편한지, 갑상선이 어떤지, 스트레스가 몇 년째인지 — 이 조건들이 동시에 정합니다. 그래서 같은 것을 먹고 같이 걸어도 몸마다 결과가 다릅니다.
현대의학도 비만을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병으로 봅니다. 조절이 흐트러진 상태로 보는 겁니다. 그러니 "덜 먹고 더 움직여라"는 말은 틀린 건 아닌데, 조절이 흐트러진 몸에서는 그게 잘 안 먹힙니다.
그래서 순서가 있습니다
살 빼기를 첫 목표로 잡으면 대개 실패합니다. 몸이 그럴 상황이 아닌데 밀어붙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밀어붙이면 몸은 오히려 아낍니다. 굶으면 몸은 "지금 어려운 시기구나" 하고 덜 쓰는 쪽으로 돌아섭니다. 그래서 처음엔 빠지다가 멈추고, 놓으면 더 붙습니다.
그래서 저는 순서를 바꿉니다.
먼저 잠을 봅니다. 잠이 모자라면 배고픔을 정하는 신호부터 흐트러집니다. 여기서 이미 기울어져 있으면 그 뒤가 안 됩니다.
그다음 소화를 봅니다. 먹은 것을 제대로 처리하는지. 여기가 무너져 있으면 잘 먹어도 재료가 안 들어옵니다.
그다음 근육을 봅니다. 근육은 가만있어도 에너지를 쓰는 자리입니다. 이게 줄면 같은 것을 먹어도 남습니다.
살은 마지막에 따라옵니다. 목표가 아니라 결과로요.
체중은 결과이지 원인이 아닙니다
체중계 숫자는 몸에서 벌어진 일의 끝에 나오는 값입니다.
끝에 나온 값을 붙잡고 씨름하면 힘듭니다. 그 값을 만든 조건을 바꾸면, 값은 따라옵니다.
제가 하는 일이 거기 있습니다. 살을 빼 드리는 게 아니라, 몸이 살을 뺄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입니다. (한약은 무엇을 하는가)
몇 년째 의지 이야기를 들으셨다면, 그 말은 접어 두셔도 됩니다.
마음이 명령으로 안 움직이듯 몸도 그렇습니다. 상황을 만들어 주면 됩니다.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