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어도 다시 굳는다면
"받을 때는 시원한데, 며칠 지나면 그대로예요."
수기 치료를 오래 받아 오신 분들이 자주 하시는 말씀입니다. 저는 이 말을 치료가 실패했다는 뜻으로 듣지 않습니다. 풀린 것과 바뀐 것이 다르다는 뜻으로 듣습니다.
굳은 조직은 어떤 상태인가
근육과 근막, 인대 같은 결합조직은 단순히 팽팽한 고무줄이 아닙니다. 그 안에는 물과 젤 같은 물질이 섞여 있습니다.
이 조직에는 흥미로운 성질이 있어서, 가만히 두면 점점 굳고 적절히 움직여 주면 서서히 물러집니다. 물리학에서는 이것을 요변성(thixotropy)이라고 부릅니다.
익숙한 예가 케첩입니다. 병 속에 가만히 있으면 굳어서 쏟아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흔들고 두드리면 갑자기 흐릅니다. 성분이 달라진 것이 아니라 성질이 달라진 것입니다.
우리 몸의 결합조직도 그렇습니다.
- 오래 같은 자세로 있으면 굳습니다
- 자고 일어난 아침에 유독 뻣뻣합니다
- 조금 움직이면 서서히 부드러워집니다
- 다시 오래 멈춰 있으면 다시 굳습니다
그래서 왜 다시 굳는가
여기서 핵심 질문이 나옵니다. 치료로 잠시 물러졌다면, 왜 며칠 만에 되돌아갈까요.
이유는 굳게 만든 조건이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조직이 굳는 데는 순서가 있습니다.
굳는다 → 덜 움직이게 된다 → 더 굳는다
↑ │
└──────────────────────────────────┘
이 고리는 스스로 돌아갑니다. 굳으면 덜 움직이고, 덜 움직이면 더 굳습니다.
여기에 압력과 염증이 얹히기도 합니다. 다만 어느 것이 먼저인지는 아직 사람에서 확인된 순서가 아닙니다. 만성 통증이 있는 조직이 실제로 달라져 있다는 것까지가 측정된 부분이고, 통증이 조직을 바꾼 것인지 조직 변화가 통증을 만든 것인지는 연구자들도 열어 두고 있습니다.
수기 치료로 굳은 조직을 물러지게 하면, 사슬의 한 지점이 잠시 끊깁니다. 그런데 압력을 만들어 낸 자리가 그대로면, 고리는 곧 다시 돌기 시작합니다. 며칠이면 충분합니다.
제가 택하는 방식, 그리고 그 방식의 뒷면
저는 조직에 적절한 자극을 주어 스스로 물러지도록 하는 쪽으로 다룹니다. 요변성이 일어날 조건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앞의 케첩을 다시 불러와야겠습니다. 흔들기를 멈추면 케첩은 다시 굳습니다. 그게 요변성이라는 말에 원래 들어 있는 뒷면입니다.
실제로 사람에게서 잰 숫자가 있습니다. 12명의 손목에서 흔들거나 진동을 주자 근육의 초기 저항이 약 19~20% 떨어졌는데, 15초쯤 쉬자 처음의 뻣뻣함이 대부분 돌아왔습니다.
그러니 "한 번 풀면 되돌아가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그리고 저는 그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되돌아간다는 것이야말로, 왜 한 번의 치료로 끝나지 않는지, 왜 사이사이 움직이셔야 하는지, 왜 유지 관리가 필요한지를 정확히 설명해 주기 때문입니다. (교정이 자꾸 돌아온다면 — 유지 관리가 치료의 절반)
굳는 성질이 있는 조직은 계속 굳으려 합니다. 그래서 치료는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방향을 바꾸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도 부족합니다
조직을 물러지게 해도, 압력을 만든 자리를 찾지 못하면 또 굳습니다.
- 아랫배의 압력이 높아 허리가 계속 버티고 있는가
- 횡격막이 굳어 호흡이 얕고, 목과 어깨가 대신 일하고 있는가
- 한쪽 골반이 틀어져 반대쪽이 계속 균형을 잡고 있는가
아픈 곳은 사슬의 끝이고, 굳게 만든 압력은 사슬의 앞에 있습니다. 그래서 어깨가 아파서 오신 분의 배를 만져 보고, 목이 아파서 오신 분의 호흡을 봅니다.
한약이 맡는 자리
수기 치료는 치료실 안에서만 작용합니다. 그런데 조직이 굳는 고리는 하루 종일 돌아갑니다.
한약은 치료실을 떠난 시간에 작용합니다. 고인 체액을 빼고, 식지 않는 염증을 가라앉히고, 압력이 높아진 자리의 순환을 돕습니다. 지속적으로 몸에 신호를 건네는 역할입니다.
수기 치료가 굳은 것을 물러지게 한다면, 한약은 덜 굳는 쪽으로 조건을 옮깁니다. 어느 하나만으로는 부족한 이유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움직임입니다. 요변성은 자극이 있어야 일어납니다. 가만히 누워 계시면 조직은 다시 굳습니다. 치료 후에 어떻게 움직이셔야 하는지를 제가 반드시 말씀드리는 이유입니다.
여러 번 풀었는데 자꾸 되돌아온다면, 그것은 몸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조직은 원래 되돌아가려 합니다.
굳게 만든 자리를 아직 못 찾았거나, 되돌아가는 속도를 늦출 방법을 아직 못 만든 것입니다. 손으로 푸는 일과, 굳게 만든 조건을 옮기는 일과, 사이사이 움직이시는 일 — 셋이 함께 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모든 굳음이 이렇게 풀리지는 않습니다. 실제 구조 손상이 있거나 수술이 필요한 상태도 있고, 그런 신호가 보이면 검사를 먼저 권해 드립니다.
참고한 자료
- 사람의 근육은 가만히 두면 뻣뻣해지고 흔들면 물러지며, 쉬면 다시 돌아옵니다 — The Journal of Physiology, 2001
- 만성 요통이 있는 분 121명에서 근막 층 사이가 미끄러지는 정도가 약 20% 줄어 있었습니다 — BMC Musculoskeletal Disorders, 2011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