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오는 힘이 더디어질 때
짧은 답
당뇨도 아닌데 몸이 굳는다고 하십니다. 빵 껍질이 갈색으로 단단해지는 것과 같은 일이 몸 안에서도 아주 천천히 일어납니다.
목차
나이가 들면서 몸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하십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한참 뻣뻣하고, 허리를 굽히거나 목을 돌릴 때 뻑뻑합니다. 그런데 병원에 가면 대개 큰 이상은 없다고 합니다. 혈당도 정상, 염증 수치도 정상. "당뇨도 아닌데 왜 이렇게 굳느냐"고 물으십니다.
저는 이럴 때 부엌 이야기를 먼저 꺼냅니다.
빵 껍질이 갈색으로 단단해지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빵을 구우면 겉이 갈색으로 변하며 단단해집니다. 고기를 구우면 겉면이 굳고 향이 납니다. 이것은 당과 단백질이 열을 만나 서로 들러붙는 반응입니다. 백 년도 더 전에 이 현상을 정리한 화학자의 이름을 따 마이야르 반응이라고 부릅니다. 여기까지는 요리의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같은 일이 우리 몸 안에서도 일어납니다. 열 대신 시간을 들여, 아주 천천히.
혈당이 높지 않아도 당은 조금씩 들러붙습니다
혈액 속 포도당은 몸을 돌아다니다가 단백질에 조금씩 달라붙습니다. 효소가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일어나는 반응입니다. 혈당이 아주 높으면 빨리 붙고, 정상이어도 느리게나마 붙습니다. 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하다가, 시간이 더 지나면 떨어지지 않는 단단한 결합으로 굳습니다.
문제는 이 결합이 어디에 쌓이느냐입니다. 우리 몸에서 가장 천천히 교체되는 것이 콜라겐과 엘라스틴 — 피부·힘줄·인대·혈관벽·관절을 이루는 결합조직입니다. 이것들은 한번 만들어지면 몇 달에서 몇 년씩 그 자리에 있습니다. 그래서 당이 들러붙어 굳은 자국도 그만큼 오래 남습니다.
콜라겐 섬유는 원래 서로 미끄러지면서 늘어났다 되돌아옵니다. 그 미끄러짐이 조직의 탄성입니다. 그런데 섬유와 섬유 사이가 당으로 다리처럼 이어져 굳으면, 미끄러지지 못하고 뻣뻣해집니다. 늘어났다 돌아오는 힘을 잃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잘 밝혀진 사실입니다.
검사는 지금을 재고, 뻣뻣함은 쌓인 시간을 말합니다
그러면 왜 검사에는 안 잡힐까요.
혈당 검사는 지금 이 순간의 값을 잽니다. 당화혈색소라는 검사도 기껏해야 최근 두세 달을 봅니다. 그런데 조직에 쌓인 이 굳은 자국은 몇 년에 걸친 누적입니다. 지난 세월 당이 조직에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지가 쌓인 결과인데, 오늘 아침에 잰 혈당은 그 세월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검사는 정상이라고 나옵니다. 검사가 틀린 것이 아닙니다. 검사는 자기가 재기로 한 것 — 오늘의 혈당 — 을 정확히 쟀습니다. 다만 몸이 말하는 뻣뻣함은 오늘의 값이 아니라 쌓인 시간의 형편입니다. 둘은 서로 다른 것을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물리적으로 풀어도 덜 풀립니다
여기서부터는 제가 진료실에서 보는 그림입니다.
굳은 조직을 손으로 눌러 풀고 늘여 주면 한결 부드러워집니다. 압력을 받았다 되돌아오는 힘, 곧 탄성을 되살리는 일입니다. 그런데 화학적으로 이미 '용접'되어 버린 자리는, 물리적으로 풀어 줘도 예전만큼 돌아오지 않습니다. 손으로 하는 일에는 한계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분께 몸을 부드럽게 하는 일과 당이 오래 머물지 않게 하는 일을 함께 봅니다. 이미 굳은 자국을 되돌리기는 어렵지만, 앞으로 새로 굳는 속도는 늦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은 제가 임상에서 세운 관점이고, 앞으로 더 채워 가야 할 자리이기도 합니다.
복용 중인 약이 있으시면 주치의와 그대로 이어 가시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갑자기 한 관절이 붓고 붉고 뜨거워지거나 열이 함께 온다면, 그것은 이 이야기와 다른 문제이니 검사를 먼저 받으셔야 합니다.
몸이 뻣뻣해지는 것을 우리는 흔히 나이 탓으로만 돌립니다. 그러나 그 뻣뻣함은, 그동안 당이 내 조직에 얼마나 오래 머물렀는지를 몸이 뒤늦게 보고해 오는 것이기도 합니다. 오늘의 혈당이 정상이라는 말과, 내 몸이 굳어 왔다는 사실은 그렇게 나란히 참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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