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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버리려던 것에도 쓰임이 있었습니다

〈몸이 스스로를 지키는 법〉 · 8편 중 7번째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글 · 의료 내용 확인 허지영 대표원장 · 한의학 병리학 박사

짧은 답

멍이 노랗게 변할 때 보이는 그 색이 빌리루빈입니다. 오래된 적혈구를 정리하고 남은 찌꺼기로만 여겨져 왔는데, 지금은 몸이 스스로 만드는 항산화 물질로 읽힙니다. 버리는 길과 쓰는 일이 한 줄기에 있고, 그래서 담즙이 도는 흐름은 소화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멍이 든 자리를 며칠 두고 보면 색이 바뀝니다. 검붉던 것이 푸르스름해지고, 그다음 노랗게 변하다 사라집니다.

그 노란색에 이름이 있습니다. 빌리루빈입니다. 수명이 다한 적혈구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물질이고, 몸은 이것을 간으로 보내 담즙에 실어 내보냅니다.

오랫동안 이 물질은 찌꺼기로만 여겨졌습니다. 쌓이면 눈과 피부가 노래지니 치워야 할 것으로만 본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르게 읽습니다.

버리려던 것이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빌리루빈에는 산화를 막는 힘이 있습니다.

몸에서는 에너지를 쓰는 동안 반응성이 큰 부스러기가 계속 생깁니다. 이것이 세포막의 지질이나 단백질을 상하게 하는데, 빌리루빈은 그 부스러기를 붙잡아 그 연쇄를 끊는 쪽으로 작용합니다. 사람의 혈관 내피세포에서 산화 스트레스를 실제로 덜어 준다는 것이 확인되어 있습니다.

더 눈에 띄는 것은 농도입니다. 그 연구에서 효과가 나타난 범위가 사람의 피에 실제로 도는 정도였습니다. 아주 많이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 도는 만큼으로도 일한다는 뜻입니다.

버리는 길에 실려 나가는 동안에도 일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만 많을수록 좋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여기서 오해가 생기기 쉬워 짚어 둡니다.

빌리루빈이 크게 오르면 그것대로 문제입니다. 눈과 피부가 노래지는 황달은 간이나 담도에 무언가 막혀 있다는 신호일 수 있고, 신생아에서는 높은 수치 자체가 위험합니다. 쓰임이 있다는 말과 많을수록 좋다는 말은 다릅니다.

몸에 있는 것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적당한 자리에 적당한 만큼 있을 때 일을 하고, 그 범위를 벗어나면 해가 됩니다.

그래서 흐름이 문제가 됩니다

쓰임이 있든 없든, 빌리루빈은 결국 담즙에 실려 나가야 합니다.

담즙은 간에서 만들어져 쓸개에 모였다가 음식이 들어오면 장으로 나옵니다. 지방을 잘게 흩어 흡수를 돕는 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것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몸이 물에 잘 안 녹는 물질을 내보내는 통로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이 흐름이 느려지면 소화만 불편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보내야 할 물질이 머무는 시간이 길어집니다. 흐름이 걸리는 자리에서 일이 생긴다는 이야기가 여기서도 나옵니다. (혈관은 아무 데나 좁아지지 않습니다)

오래전부터 이 흐름을 여는 쪽을 겨눈 약재가 있습니다

한의학에서 대황은 아래로 내려보내는 약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약재를 배변 하나로만 설명하면 절반을 놓친다고 봅니다.

대황이 겨누는 자리는 좁아지고 막혀서 정체가 생긴 곳에 가깝습니다. 장에 오래 머물던 것을 한 번에 내보내 그 안의 환경을 바꾸는 일이 그렇고, 담즙이 도는 쪽으로 작용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앞에서 본 것처럼 담즙은 빌리루빈이 실려 나가는 길이니, 그 길을 여는 일은 내보내는 일과 쓰는 일에 함께 걸립니다.

이 약재를 쓰던 사람들이 빌리루빈을 알았을 리는 없습니다. 다만 무엇이 풀리는지를 관찰로 알아내 적어 두었고, 지금 화학이 그 길에 이름을 붙이고 있습니다. 이런 자리를 만날 때마다 배울 점이 많다고 느낍니다.

진료실에서 제가 묻는 것

저는 소화 이야기를 들을 때 기름진 음식을 드신 뒤가 어떤지를 따로 묻습니다. 담즙이 도는 흐름이 걸리면 그 자리에서 티가 나기 때문입니다.

변이 어떤 색인지, 며칠에 한 번인지, 배에 더부룩함이 언제 오는지도 함께 봅니다. 그리고 눈 흰자를 봅니다. 몸에서 노란 기운이 먼저 드러나는 자리라 진찰에 오래 쓰여 왔습니다. (진료실에서 눈을 보는 이유)

진료가 먼저인 경우

눈 흰자나 피부가 노랗게 보이면 진료가 먼저입니다. 변 색이 눈에 띄게 옅어지거나 소변이 진한 갈색으로 바뀌는 경우, 오른쪽 윗배 통증이 열과 함께 오는 경우도 그렇습니다. 이런 신호는 담즙이 나가는 길에 무언가 걸려 있다는 뜻일 수 있어 확인이 필요합니다.


멍이 노랗게 변하는 며칠 사이, 몸에서는 이런 일이 지나갑니다.

한의학은 몸에서 내보내는 일을 오래 중요하게 다루었습니다. 무엇이 머물러 있는지, 어디가 막혔는지를 묻고, 풀어 내리는 쪽 약재를 따로 갖추었습니다. 찌꺼기를 치우자는 물음이 아니라 흐름을 되돌리자는 물음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길에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적혈구를 정리한 자리에서 색이 나오고, 그 색이 산화를 막는 일을 하면서, 담즙에 실려 장으로 내려갑니다.

버리는 길과 쓰는 일이 한 줄기에 있었습니다. 몸에서 그냥 버려지는 물질은 생각보다 적고, 그런 자리를 공부해 환자분께 말씀드립니다.


참고한 자료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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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허지영 대표원장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 서울 광진구 자양동 · 구의역 4번 출구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단독 저서 《몸을 돌려놓는 한약》 · 《검사 밖의 몸》 · 《과학의 눈으로 읽는 한의학》 · 직접 쓴 글 284편

이력 펼쳐보기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병리학(질병의 기전)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같은 대학 본초학 교실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약물을 연구했습니다. 질병과 약물을 양쪽에서 연구한 이력이 진료의 바탕입니다 — "이 약이 왜 이 병에 듣는가"를 병리와 약리 양쪽 언어로 설명합니다.

몸을 다층으로 보고, 환경 변화에 적응해 돌아오는 힘(회복 탄력성)을 살피며, 적응이 안 될 때는 몸 안의 환경 쪽을 손대는 것 — 이 세 관점이 진료의 바탕입니다. 자율신경과 만성·난치질환, 체형·구조의 문제를 현대과학의 언어로 설명하고, 원인에 맞는 치료를 제안합니다. 한의사를 대상으로 처방과 임상 강의를 10년 이상 해 왔으며, 저서 《한의사들이 읽어주는 한의학》 공동 저자입니다. 이 책은 2018년 하반기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되었습니다(기술과학 분야 15종에 포함).

단독 저서로 《과학의 눈으로 읽는 한의학》(2026), 《검사 밖의 몸》(2026), 《몸을 돌려놓는 한약》(2026) 세 권을 썼습니다. 첫 책은 한약이 몸 안에서 어떤 길을 지나는지를 성분과 기전의 이름까지 따라가며 설명했고, 두 번째 책은 검사는 정상이라는데 여전히 불편한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여섯 갈래로 나누어 살폈습니다. 세 번째 책은 그 몸이 어디서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는지를 자율신경, 만성 대사성 질환, 만성 통증, 여성의 몸, 아이와 청소년, 노년기, 낫지 않는 병의 일곱 갈래로 봅니다.

이 글을 쓴 곳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은 서울 광진구 자양동(자양로 46, 오띠모빌딩 2층 201호)에 있습니다. 구의역 4번 출구에서 걸어서 7분입니다. 자율신경·만성통증·난치질환처럼 검사에서 잘 잡히지 않는 불편을 주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