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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관은 아무 데나 좁아지지 않습니다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글 · 의료 내용 확인 허지영 대표원장 · 한의학 병리학 박사

짧은 답

지질 수치는 정상인데 동맥 한 곳이 두꺼워져 있다는 말을 듣는 분들이 계십니다. 동맥경화는 혈관 전체에 고르게 생기지 않고, 갈라지고 굽이도는 자리에서 시작합니다. 그 자리에서는 흐름이 흐트러지고, 벽이 면역세포를 불러 세우고, 벽 안으로 들어간 대식세포가 산화된 지질을 받아들이다 한계에 이르러 거품세포가 됩니다. 전단응력과 거품세포가 그 자리의 이름입니다.

"지질 수치는 괜찮다는데 혈관이 좁아졌다고 합니다."

건강검진을 받고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콜레스테롤은 정상 범위인데 초음파나 CT에서는 동맥 한 곳의 벽이 두꺼워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럴 때 저는 수치보다 어느 자리가 두꺼워졌는지를 먼저 봅니다. 동맥경화는 혈관 전체에 고르게 번지지 않습니다. 시작하는 자리가 거의 정해져 있습니다.

강이 갈라지는 곳에 모래가 쌓입니다

곧게 흐르는 강에서는 물이 나란히 흘러갑니다. 그런데 강이 갈라지거나 폭이 갑자기 넓어지면 흐름이 흐트러집니다. 한쪽으로 도는 물살이 생기고, 그 자리에 모래와 잎사귀가 쌓입니다. 곧은 구간에서는 잘 쌓이지 않습니다.

혈관도 같은 물리를 따릅니다. 동맥이 갈라지는 곳, 굽이도는 곳, 갑자기 넓어지는 곳에서 흐름이 흐트러집니다. 동맥경화는 대개 그런 곳에서 시작합니다. 곧게 뻗은 구간은 상대적으로 덜합니다.

혈관 벽은 흐름을 읽고 있습니다

왜 자리를 타는지 알려면, 혈관 안쪽 면이 흐름을 느낀다는 것부터 봐야 합니다.

피가 벽을 스치고 지나가면서 벽에 거는 힘이 있습니다. 이 힘을 전단응력이라고 부릅니다. 혈관 안쪽을 덮은 내피세포는 이 힘을 신호로 읽습니다. (혈관 안쪽 면은 흐름을 느끼고 있습니다)

곧고 꾸준한 흐름이 걸리면 내피세포는 산화질소를 내며 조용히 지냅니다. 혈관을 부드럽게 유지하고, 지나가는 세포가 벽에 붙지 않게 합니다.

흐름이 흐트러지면 같은 세포가 태도를 바꿉니다. 표면에 지나가는 면역세포를 붙잡는 고리를 내겁니다. 벽이 "여기 좀 봐 달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벽은 흐름에 그저 당하지 않습니다. 흐름의 모양을 읽고 스스로 태도를 바꾸기 때문입니다.

치우러 온 세포가 그 자리에 남습니다

혈액을 도는 단핵구가 그 고리에 붙잡혀 벽 안으로 들어갑니다. 조직에 자리를 잡으면 대식세포로 자랍니다. 먹어 치우고 뒷정리를 맡은 세포입니다.

대식세포는 그 자리에 쌓인 지질 가운데 산화된 것을 받아들입니다. 여기까지는 수리에 가깝습니다. 산화된 지질은 그대로 두면 주변을 상하게 하므로, 먹어서 치우는 편이 낫습니다.

문제는 한계입니다. 받아들이는 양이 내보내는 양을 넘어서면 세포 안에 지방 방울이 가득 찹니다. 현미경으로 보면 속이 거품처럼 보여 거품세포라고 부릅니다.

거품세포가 되면 그 세포는 빠져나가지 못하고 눌러앉습니다. 그리고 한계에 이른 세포들이 죽으면서 안에 담고 있던 지질과 찌꺼기를 그 자리에 그대로 남깁니다. 그렇게 쌓인 것이 죽상반의 속을 이룹니다.

치우러 온 쪽이 결국 쌓이는 것의 일부가 됩니다. 이 순서를 알고 나서 혈관 이야기를 다르게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수치만으로는 잘 안 보입니다

콜레스테롤 수치는 재료가 얼마나 도는지를 알려 줍니다. 중요한 정보입니다. 다만 그것만으로 답이 안 나오는 자리가 있습니다.

같은 양이 흐르더라도 곧은 구간에서는 지나가고 갈라지는 곳에서는 머뭅니다.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 산화될 기회가 늘고, 벽이 고리를 내걸고 있으면 불려 갈 기회도 늘어납니다. 재료가 얼마나 있느냐와 그 재료가 어디에 머무느냐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수치가 정상인데 두꺼워진 자리가 잡히는 일이 그래서 생깁니다. 검사가 틀린 것도, 몸이 유별난 것도 아닙니다. (하나씩 재면 다 정상입니다)

진료실에서 제가 보는 것

저는 혈관 이야기를 들을 때 수치와 함께 흐름이 걸릴 만한 사정을 봅니다.

오래 앉아 계시는지, 종아리를 쓰는 시간이 하루에 얼마나 되는지, 잠은 어떤지를 묻습니다. 흐름은 심장만 만들지 않습니다. 몸을 쓰는 방식이 함께 만듭니다. 곧고 꾸준한 흐름이 벽을 조용하게 지켜 준다면, 그 흐름을 만드는 일이 곧 관리입니다.

그리고 수치가 정상이라는 말을 "아무 일도 없다"로 옮기지 않습니다. 구조가 멀쩡하다는 뜻이지, 그 자리의 형편까지 봤다는 뜻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료가 먼저인 경우

가슴이 조이듯 아프거나 턱과 팔로 뻗는 통증이 있으면, 특히 움직일 때 생겼다가 쉬면 가라앉는다면 진료가 먼저입니다. 걷다가 종아리가 아파 쉬어야 하는 일이 되풀이될 때도 그렇습니다. 혈압·혈당·지질을 이미 관리하고 계신 분이라면 그 관리를 이어 가시는 편이 좋습니다.


동맥경화는 강물이 많아서 생기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한의학은 몸을 볼 때 막힌 자리를 오래 물어 왔습니다. 어디가 걸리는지, 어느 쪽이 답답한지, 눌러 보면 어떤지를 나누어 적어 두었습니다. 양을 재는 물음이 아니라 자리를 찾는 물음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자리에서 벌어지는 일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벽에 걸리는 힘이 있고, 그 힘의 모양이 바뀌면 벽이 면역세포를 불러 세우고, 벽 안으로 들어간 대식세포가 산화된 지질을 안은 채 눌러앉습니다.

모래가 쌓이는 곳은 강물이 많아서가 아니라 물길이 꺾이기 때문입니다. 예전 진찰이 자리부터 물은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를 공부해 환자분께 전해 드립니다.


참고한 자료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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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허지영 대표원장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 서울 광진구 자양동 · 구의역 4번 출구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단독 저서 《몸을 돌려놓는 한약》 · 《검사 밖의 몸》 · 《과학의 눈으로 읽는 한의학》 · 직접 쓴 글 284편

이력 펼쳐보기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병리학(질병의 기전)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같은 대학 본초학 교실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약물을 연구했습니다. 질병과 약물을 양쪽에서 연구한 이력이 진료의 바탕입니다 — "이 약이 왜 이 병에 듣는가"를 병리와 약리 양쪽 언어로 설명합니다.

몸을 다층으로 보고, 환경 변화에 적응해 돌아오는 힘(회복 탄력성)을 살피며, 적응이 안 될 때는 몸 안의 환경 쪽을 손대는 것 — 이 세 관점이 진료의 바탕입니다. 자율신경과 만성·난치질환, 체형·구조의 문제를 현대과학의 언어로 설명하고, 원인에 맞는 치료를 제안합니다. 한의사를 대상으로 처방과 임상 강의를 10년 이상 해 왔으며, 저서 《한의사들이 읽어주는 한의학》 공동 저자입니다. 이 책은 2018년 하반기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되었습니다(기술과학 분야 15종에 포함).

단독 저서로 《과학의 눈으로 읽는 한의학》(2026), 《검사 밖의 몸》(2026), 《몸을 돌려놓는 한약》(2026) 세 권을 썼습니다. 첫 책은 한약이 몸 안에서 어떤 길을 지나는지를 성분과 기전의 이름까지 따라가며 설명했고, 두 번째 책은 검사는 정상이라는데 여전히 불편한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여섯 갈래로 나누어 살폈습니다. 세 번째 책은 그 몸이 어디서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는지를 자율신경, 만성 대사성 질환, 만성 통증, 여성의 몸, 아이와 청소년, 노년기, 낫지 않는 병의 일곱 갈래로 봅니다.

이 글을 쓴 곳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은 서울 광진구 자양동(자양로 46, 오띠모빌딩 2층 201호)에 있습니다. 구의역 4번 출구에서 걸어서 7분입니다. 자율신경·만성통증·난치질환처럼 검사에서 잘 잡히지 않는 불편을 주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