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도지는 데에도 이유가 있습니다
짧은 답
한 해에 두어 번씩 도지는데, 그 두어 번이 정말 아무 때나 올까요? 어느 분에게는 찬 바람이 처음 부는 무렵, 어느 분에게는 장마 끝, 어느 분에게는 일이 몰린 주가 지나고 사나흘 뒤입니다. 한 번으로는 안 보이고 여러 번째가 되어야 보이는 규칙이 있습니다 — 견줄 상대는 남이 아니라 지난번의 나입니다. 늘 오던 모양과 다르게 오면 규칙을 세기 전에 확인이 먼저입니다.
한 해에 두어 번씩 그러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데 그 두어 번이 아무 때나 오지는 않습니다. 어느 분에게는 늘 찬 바람이 처음 부는 무렵이고, 어느 분에게는 장마가 끝나 갈 즈음이고, 어느 분에게는 일이 몰렸던 주가 지나고 사나흘 뒤입니다.
겪는 쪽에서는 이 규칙이 잘 안 보입니다. 한 번씩 겪을 때마다 그때 있었던 일로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여러 번째가 되어야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두 번째부터 좁혀집니다
도진 날에 무엇이 있었느냐고 하면 한둘이 아닙니다. 그날 먹은 음식이 있고, 못 잔 밤이 있고, 마음 쓴 일이 있고, 바뀐 날씨가 있습니다. 그 가운데 무엇이 그랬는지는 한 번으로는 가려지지 않습니다.
두 번째와 세 번째가 쌓이면 사정이 달라집니다. 그때마다 있었던 일들 가운데 몇 가지는 매번 있고 나머지는 그때뿐입니다. 그때뿐인 것이 빠져나가면서 남는 목록이 좁아집니다. 자세히 들어 보면 아무 때나 오지는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남는 목록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몸을 흔들 만한 일은 여럿이고, 사람마다 먼저 밀리는 쪽이 다릅니다. 그래서 남의 목록이 내 목록이 되지 못합니다. 되풀이가 여기서 제 몫을 합니다. 비교할 상대가 남이 아니라 지난번의 나이기 때문입니다. 좋아졌다 나빠졌다 반복될 때 좋아진 날을 묻는 이유와 같은 눈입니다.
어떤 규칙은 몸 바깥에 있습니다
찬 바람이 불 무렵이나 장마 끝처럼 철을 타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 철을 기분 탓으로 넘기기 어렵게 만드는 자료가 있습니다.
바깥의 계절이 몸 안의 바탕을 함께 옮겨 놓는다는 뜻입니다. 여럿을 모아 보면 계절에 따라 면역 쪽 바탕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다만 이것만으로 한 사람의 재발을 계절 탓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철을 따라 도지는 분에게 그 철은 바꿀 수 있는 조건이 아닙니다. 해마다 그 철이 몸을 한 번씩 지나갑니다.
계기와 낌새가 섞여 있습니다
도진 날을 되짚다 보면 하나쯤 걸립니다. 그 전날 유난히 하품이 잦았다든가, 목이 뻣뻣했다든가, 괜히 무엇이 당겼다든가 하는 일들입니다.
되풀이되는 통증을 오래 들여다본 데서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편두통을 본 자료에서는, 발작이 드러나기 하루 이틀 전에 이미 안에서 시작되고, 그동안 평소와 다른 낌새가 하나둘 나타납니다. 그런데 겪는 사람은 나중에 그 낌새를 계기 쪽에 놓습니다. 시작된 뒤의 표시였는데 원인으로 적힙니다.
그런가 하면 실제로 오기 쉽게 만드는 일들도 함께 있습니다. 잠이 밀린 뒤, 마음 쓸 일이 몰린 뒤, 호르몬이 바뀌는 때가 그렇습니다. 두 가지가 섞여 있어서 겪으면서 갈라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도진 날마다 내가 한 일을 하나씩 찾아 대다 보면, 없는 잘못을 만들어 내게 되기도 합니다.
미리 알면 그날이 달라집니다
오는 때를 안다고 오지 않게 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달라지는 것이 둘 있습니다.
하나는 그날의 뜻입니다. 되살아난 날을 처음으로 되돌아간 날로 여기면, 그때까지 지나온 날들이 한꺼번에 없던 일이 됩니다. 올 까닭이 있어서 온 날인 줄 알면 그 하루는 그 하루로 끝납니다.
다른 하나는 볼 데가 좁아지는 것입니다. 되풀이되던 몇 가지만 남으면, 다음에 무엇부터 살펴야 하는지가 그 안에서 정해집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안 걸리는데 오는 날도 있습니다. 규칙이 있다는 말과 매번 맞는다는 말은 다릅니다. 거의 맞는데 늘 맞지는 않아도 그것은 규칙입니다. 맞지 않는 날은 그냥 맞지 않는 날로 남습니다.
먼저 다른 곳으로
늘 오던 모양과 다르게 올 때가 있습니다. 시작하는 꼴이 여느 때와 다르거나, 여느 때에 없던 무엇이 함께 올 때입니다.
전부터 늘 있어 왔다는 사실이 이번에도 같다는 보증은 되지 않습니다. 이럴 때는 되풀이의 규칙을 세기 전에 확인이 먼저입니다.
도진 날은 그 하루 안에 들어 있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하루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까닭이 안 잡힙니다. 안 잡히는 것과 없는 것은 다릅니다.
되풀이는 그 둘을 갈라 줍니다. 여러 번째의 나에게서만 나오는 답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한 번의 이야기만 듣지 않습니다. 지난번 이야기들도 함께 듣습니다.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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