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약, 아무 때나 먹으면 될까
"보약 한 재 먹으면 좀 나을까요?"
환절기마다 이 말씀을 들으러 오십니다. 그리고 저는 대개 되묻습니다. "기운이 없다는 게 어떤 겁니까?"
같은 말로 오시는데 몸에서 벌어지는 일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기운이 없는 데는 두 갈래가 있습니다
하나는 비어서 없는 겁니다. 쓸 것이 모자랍니다. 잘 못 먹었거나, 오래 앓았거나, 크게 쓰고 못 채웠거나. 이런 몸은 채워 주면 힘이 납니다.
하나는 있는데 못 쓰는 겁니다. 재료는 있는데 흐름이 막혀서 필요한 데로 안 갑니다. 얹혀 있고, 더부룩하고, 몸이 무겁습니다. 이런 몸은 채우면 더 무거워집니다.
두 분 다 "기운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같은 약을 드리면 한쪽은 힘이 나고 한쪽은 속이 답답해집니다.
"보약 먹고 얹혔다"는 말이 여기서 나옵니다
가끔 이런 이야기를 들으십니다. 그러면 한약이 안 맞는다고 생각하게 되십니다.
약이 나빠서가 아니라 순서가 바뀐 겁니다. 막힌 몸에 먼저 채워 넣은 겁니다.
길이 막힌 집에 짐을 더 들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짐이 나빠서가 아니라 길부터 텄어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분께는 먼저 트고 나서 채웁니다. 순서를 지키면 같은 약이 잘 듣습니다.
그리고 채울 몸인지도 봅니다
하나 더 있습니다.
받을 준비가 안 된 몸에 좋은 것을 넣으면 부담이 됩니다. 오래 굶은 사람에게 갑자기 진수성찬을 차려 주면 탈이 나는 것과 같습니다.
소화가 무너져 있으면 아무리 좋은 재료를 넣어도 재료로 안 들어옵니다. 그래서 먹는 것보다 받는 쪽을 먼저 볼 때가 많습니다. (아침에 유난히 못 일어난다면)
그래서 이런 때 오시면 좋습니다
- 쉬어도 안 풀리는 피로가 몇 달째일 때
- 환절기마다 같은 자리에서 무너질 때
- 출산이나 수술 뒤 회복이 더딜 때
- 큰일을 앞두고 몸을 미리 만들어 두고 싶을 때
시기로 말하면, 무너지고 나서보다 무너지기 전이 낫습니다. 다 쓰고 나서 채우는 것보다 남아 있을 때 채우는 편이 빠릅니다.
보약은 아무 때나 먹는 게 아니라, 지금 이 몸에 맞아야 힘을 냅니다.
그러니 "보약 한 재"보다 먼저 나올 질문이 있습니다. 비어 있습니까, 막혀 있습니까.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