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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 뇌에게 거는 전화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글 · 의료 내용 확인 허지영 대표원장 · 한의학 병리학 박사

짧은 답

배가 편치 않은 날이면 마음까지 가라앉으시나요. 우리는 뇌에서 장으로 명령이 내려간다고 생각하지만, 미주신경 신호의 대부분은 장에서 뇌로 올라갑니다. 배가 편치 않은 날 마음까지 가라앉는 데는 이 방향이 담겨 있습니다.

배가 편치 않은 날은 마음도 가라앉고, 사소한 일에 예민해집니다. 반대로 속이 편안하면 이상하게 마음도 느긋합니다. 저는 진료실에서 이 흔한 연결을 자주 봅니다. 그리고 이 연결의 방향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 반대일 때가 많습니다.

뇌에서 장으로 가는 게 아니라, 장에서 뇌로

우리는 대개 "스트레스가 장을 상하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뇌가 위, 장이 아래에서 명령을 받는다는 그림입니다. 절반은 맞습니다. 그런데 뇌와 장을 잇는 큰 전화선 — 미주신경 — 을 들여다보면, 오가는 신호의 대부분이 장에서 뇌로 올라가는 방향입니다. 뇌가 장에게 거는 전화보다, 장이 뇌에게 거는 전화가 훨씬 굵습니다.

즉 장은 명령만 받는 아래층이 아닙니다. 장은 자기 형편을 끊임없이 위로 보고합니다. 지금 편안한지, 무엇이 들어왔는지, 벽이 편치 않은지를요. 뇌는 그 보고를 받아 몸 전체의 분위기를 정합니다. 장에서 "여기 괜찮다"는 신호가 올라오면 뇌는 느슨해지고, "여기 시끄럽다"는 신호가 올라오면 뇌는 은근히 경계 태세로 기웁니다.

그래서 마음이 장을 타기도 합니다

이 방향을 알면, 배가 편치 않은 날 마음까지 가라앉는 일이 다르게 읽힙니다. 마음이 약해서가 아니라, 장이 위로 보내는 보고가 달라진 것입니다.

장의 벽이 편치 않거나, 장 속 환경이 흐트러지거나, 장이 늘 긴장해 있으면, 위로 올라가는 전화의 내용이 바뀝니다. 뇌는 그 바뀐 보고를 받아 더 예민하고 더 쉽게 놀라는 쪽으로 몸을 맞춥니다. 잠이 얕아지고, 사소한 자극에 크게 반응하고, 이유 없이 마음이 조입니다. 겉으로는 마음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전화선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시작이 장일 때가 있습니다. 이 책의 5부가 말하는 "부품은 정상인데 사이의 조율이 흔들린다"가 여기서도 그대로입니다.

내시경은 장의 모양을 봅니다

장을 보는 검사 — 내시경이나 피 검사 — 는 대개 장의 모양과 염증을 봅니다. 그런데 그 장이 뇌에게 어떤 신호를 보내는지는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시경은 깨끗하다는데 늘 속이 예민하고 마음까지 편치 않다"는 일이 생깁니다. 장의 모양과, 장이 위로 거는 전화의 내용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분께 마음만 다독이거나 장만 들여다보지 않고, 그 사이의 전화선을 함께 봅니다. 장을 편하게 하는 일이 마음을 눅이는 데 도움이 되고, 반대로 긴장을 더는 일이 장을 가라앉히기도 합니다. 두 방향이 한 선으로 이어져 있으니까요.

다만 검은 변이나 피가 섞인 변, 까닭 없는 체중 감소, 밤에 깨울 만큼의 복통이 있다면 — 그것은 이 이야기를 넘어선 신호입니다. 장을 확인하는 검사가 먼저입니다.


우리는 마음이 몸을 다스린다고 여기기 쉽습니다. 그런데 장과 뇌 사이에서는, 아래에서 위로 오르는 전화가 더 굵습니다.

배가 편치 않은 날 마음까지 가라앉는 것은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장이 뇌에게 건 전화의 내용이 달라졌다는 몸의 보고서일 수 있습니다.


참고한 자료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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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허지영 대표원장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 서울 광진구 자양동 · 구의역 4번 출구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단독 저서 《몸을 돌려놓는 한약》 · 《검사 밖의 몸》 · 《과학의 눈으로 읽는 한의학》 · 직접 쓴 글 284편

이력 펼쳐보기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병리학(질병의 기전)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같은 대학 본초학 교실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약물을 연구했습니다. 질병과 약물을 양쪽에서 연구한 이력이 진료의 바탕입니다 — "이 약이 왜 이 병에 듣는가"를 병리와 약리 양쪽 언어로 설명합니다.

몸을 다층으로 보고, 환경 변화에 적응해 돌아오는 힘(회복 탄력성)을 살피며, 적응이 안 될 때는 몸 안의 환경 쪽을 손대는 것 — 이 세 관점이 진료의 바탕입니다. 자율신경과 만성·난치질환, 체형·구조의 문제를 현대과학의 언어로 설명하고, 원인에 맞는 치료를 제안합니다. 한의사를 대상으로 처방과 임상 강의를 10년 이상 해 왔으며, 저서 《한의사들이 읽어주는 한의학》 공동 저자입니다. 이 책은 2018년 하반기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되었습니다(기술과학 분야 15종에 포함).

단독 저서로 《과학의 눈으로 읽는 한의학》(2026), 《검사 밖의 몸》(2026), 《몸을 돌려놓는 한약》(2026) 세 권을 썼습니다. 첫 책은 한약이 몸 안에서 어떤 길을 지나는지를 성분과 기전의 이름까지 따라가며 설명했고, 두 번째 책은 검사는 정상이라는데 여전히 불편한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여섯 갈래로 나누어 살폈습니다. 세 번째 책은 그 몸이 어디서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는지를 자율신경, 만성 대사성 질환, 만성 통증, 여성의 몸, 아이와 청소년, 노년기, 낫지 않는 병의 일곱 갈래로 봅니다.

이 글을 쓴 곳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은 서울 광진구 자양동(자양로 46, 오띠모빌딩 2층 201호)에 있습니다. 구의역 4번 출구에서 걸어서 7분입니다. 자율신경·만성통증·난치질환처럼 검사에서 잘 잡히지 않는 불편을 주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