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자리는 산성으로 기웁니다
짧은 답
크게 다치지 않았는데 유난히 아픈 자리가 있습니다. 염증이나 혈류가 모자란 자리는 산성 쪽으로 기우는데, 몸에는 그 산도를 직접 읽는 장치가 신경 끝에 달려 있습니다. 산-염기는 대사가 남긴 찌꺼기가 아니라 몸이 읽는 신호입니다.
목차
"별것 아닌데 왜 이렇게 아플까요."
멍이 크게 든 것도 아니고 부은 것도 눈에 띄지 않는데, 손도 못 대게 아픈 자리가 있습니다. 반대로 꽤 크게 다쳤는데 생각보다 덜 아픈 자리도 있습니다.
통증의 세기는 다친 크기만으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그 자리가 어떤 형편에 놓여 있느냐가 함께 정합니다. 그 형편 가운데 잘 이야기되지 않는 것이 산-염기입니다.
산성으로 기운다는 말의 뜻
몸은 살아 있는 동안 계속 산을 만듭니다. 에너지를 쓰고 나면 이산화탄소가 남고, 그것이 물과 만나면 수소이온이 생깁니다. 이 수소이온이 많아진 상태를 산성으로 기울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몸은 이것을 부지런히 치웁니다. 숨으로 이산화탄소를 내보내고, 신장으로 산을 버리면서 중탄산염을 붙잡아 둡니다. 숨은 몇 분에서 몇 시간 안에 듣고, 신장은 며칠에 걸쳐 듭니다.
여기까지는 혈액 전체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값은 아주 좁게 지켜집니다.
그런데 몸에는 산도를 읽는 장치가 있습니다
산-염기를 대사가 남긴 찌꺼기 정도로 여기기 쉽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감각신경 끝에는 수소이온이 오면 열리는 문이 달려 있습니다. 산 감지 이온통로, ASIC이라고 부릅니다. 다른 자극이 아니라 산도 자체가 열쇠입니다. 그 자리가 산성 쪽으로 내려가면 이 문이 열리고, 신경은 그것을 신호로 올려 보냅니다.
몸이 산도를 읽고 있다는 뜻입니다. 재는 장치를 따로 두었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값이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통증은 그 자리의 형편을 말합니다
염증이 있는 자리, 피가 잘 들지 않는 자리, 오래 힘을 쓴 근육은 그 자리만 산성으로 기웁니다. 혈액 검사의 산-염기 수치는 멀쩡한데도 그렇습니다. 검사는 전체를 재고, 통증은 그 자리를 말합니다.
그리고 산도가 내려가면 통증을 전하는 다른 통로들도 열리기 시작하는 선 — 역치 — 이 낮아집니다.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갈 자극이 신호가 됩니다. 아픈 자리가 유난히 예민한 데는 이런 이유가 겹쳐 있습니다. 신경이 별나서가 아니라, 그 부위의 환경이 역치를 낮춰 놓은 것입니다. (칼슘은 뼈에만 쓰이지 않습니다)
숨이 곧 조절기입니다
여기서 숨이 다시 나옵니다. 혈액의 산-염기는 이산화탄소를 얼마나 내보내느냐와 중탄산염이 얼마나 남아 있느냐의 관계로 정해집니다. 생리학에서 헨더슨–하셀바흐 식이라고 부르는 관계입니다.
그러니 숨을 어떻게 쉬느냐가 그대로 산-염기 조절입니다. 긴장해서 얕고 빠르게 몰아쉬면 이산화탄소가 지나치게 빠져나가고, 그때 손발이 저리거나 입 주위가 얼얼해지는 일이 생깁니다. (손발이 저리고 쥐가 자주 나는데 검사는 정상이라면)
산도는 신경만 건드리지 않습니다
산-염기는 통증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효소가 일하는 속도가 산도를 따라 달라지고, 세포막의 이온 통로들이 여닫히는 역치도 달라집니다. 같은 성분이 몸에 들어와도 그 자리의 산도에 따라 얼마나 활성을 띠는지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저는 산-염기를 결과가 아니라 조건으로 봅니다. 몸의 화학이 끝나고 남은 값이 아니라, 다음에 벌어질 일을 정하는 값입니다.
진료실에서 제가 먼저 보는 것
아픈 자리를 볼 때 저는 그 자리에 피가 드나들고 있는지를 먼저 봅니다. 산성으로 기우는 흔한 사정이 드나듦이 줄어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들어진 것을 치우지 못하면 그 자리에 쌓입니다.
숨 쉬는 방식도 함께 봅니다. 어깨로만 얕게 쉬고 계신 분이 적지 않습니다. 자세를 고치고 그 자리의 순환을 되살리는 일이, 아픈 곳만 붙들고 있는 것보다 나을 때가 많습니다.
진료가 먼저인 경우
숨이 차면서 의식이 흐려지거나, 갑자기 깊고 가쁜 숨이 이어진다면 산-염기가 실제로 흔들린 상태일 수 있으니 진료가 먼저입니다. 당뇨나 신장 질환이 있으시다면 더 그렇습니다.
별것 아닌데 유난히 아픈 자리를 두고 한 바퀴 돌았습니다.
한의학은 아픈 곳을 볼 때 늘 그 자리의 형편을 물었습니다. 열이 있는지, 눌러 보면 어떤지, 시원한 것과 따뜻한 것 중 어느 쪽에 나아지는지. 통증의 크기만 묻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그 형편에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산도가 있고, 그것을 읽는 문이 신경 끝에 달려 있고, 그 문이 열리면 다른 문이 열리는 역치까지 내려갑니다.
같은 곳을 다른 말로 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두 말을 겹쳐 놓고 환자분의 자리를 찾습니다.
참고한 자료
- 염증·허혈·손상이 그 자리의 산도를 낮추고, 감각신경의 산 감지 이온통로가 그것을 통증 신호로 바꾼다는 것을 정리한 종설 — Pharmaceuticals, 2010
- 혈액의 산-염기가 좁게 유지되며, 폐는 몇 분에서 몇 시간, 신장은 며칠에 걸쳐 조절한다는 생리학 정리 — StatPearls, 2022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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