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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자리는 산성으로 기웁니다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글 · 의료 내용 확인 허지영 대표원장 · 한의학 병리학 박사

짧은 답

크게 다치지 않았는데 유난히 아픈 자리가 있습니다. 염증이나 혈류가 모자란 자리는 산성 쪽으로 기우는데, 몸에는 그 산도를 직접 읽는 장치가 신경 끝에 달려 있습니다. 산-염기는 대사가 남긴 찌꺼기가 아니라 몸이 읽는 신호입니다.

"별것 아닌데 왜 이렇게 아플까요."

멍이 크게 든 것도 아니고 부은 것도 눈에 띄지 않는데, 손도 못 대게 아픈 자리가 있습니다. 반대로 꽤 크게 다쳤는데 생각보다 덜 아픈 자리도 있습니다.

통증의 세기는 다친 크기만으로 정해지지 않습니다. 그 자리가 어떤 형편에 놓여 있느냐가 함께 정합니다. 그 형편 가운데 잘 이야기되지 않는 것이 산-염기입니다.

산성으로 기운다는 말의 뜻

몸은 살아 있는 동안 계속 산을 만듭니다. 에너지를 쓰고 나면 이산화탄소가 남고, 그것이 물과 만나면 수소이온이 생깁니다. 이 수소이온이 많아진 상태를 산성으로 기울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몸은 이것을 부지런히 치웁니다. 숨으로 이산화탄소를 내보내고, 신장으로 산을 버리면서 중탄산염을 붙잡아 둡니다. 숨은 몇 분에서 몇 시간 안에 듣고, 신장은 며칠에 걸쳐 듭니다.

여기까지는 혈액 전체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값은 아주 좁게 지켜집니다.

그런데 몸에는 산도를 읽는 장치가 있습니다

산-염기를 대사가 남긴 찌꺼기 정도로 여기기 쉽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감각신경 끝에는 수소이온이 오면 열리는 문이 달려 있습니다. 산 감지 이온통로, ASIC이라고 부릅니다. 다른 자극이 아니라 산도 자체가 열쇠입니다. 그 자리가 산성 쪽으로 내려가면 이 문이 열리고, 신경은 그것을 신호로 올려 보냅니다.

몸이 산도를 읽고 있다는 뜻입니다. 재는 장치를 따로 두었다는 것은 그만큼 중요한 값이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통증은 그 자리의 형편을 말합니다

염증이 있는 자리, 피가 잘 들지 않는 자리, 오래 힘을 쓴 근육은 그 자리만 산성으로 기웁니다. 혈액 검사의 산-염기 수치는 멀쩡한데도 그렇습니다. 검사는 전체를 재고, 통증은 그 자리를 말합니다.

그리고 산도가 내려가면 통증을 전하는 다른 통로들도 열리기 시작하는 선 — 역치 — 이 낮아집니다.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갈 자극이 신호가 됩니다. 아픈 자리가 유난히 예민한 데는 이런 이유가 겹쳐 있습니다. 신경이 별나서가 아니라, 그 부위의 환경이 역치를 낮춰 놓은 것입니다. (칼슘은 뼈에만 쓰이지 않습니다)

숨이 곧 조절기입니다

여기서 숨이 다시 나옵니다. 혈액의 산-염기는 이산화탄소를 얼마나 내보내느냐와 중탄산염이 얼마나 남아 있느냐의 관계로 정해집니다. 생리학에서 헨더슨–하셀바흐 식이라고 부르는 관계입니다.

그러니 숨을 어떻게 쉬느냐가 그대로 산-염기 조절입니다. 긴장해서 얕고 빠르게 몰아쉬면 이산화탄소가 지나치게 빠져나가고, 그때 손발이 저리거나 입 주위가 얼얼해지는 일이 생깁니다. (손발이 저리고 쥐가 자주 나는데 검사는 정상이라면)

산도는 신경만 건드리지 않습니다

산-염기는 통증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효소가 일하는 속도가 산도를 따라 달라지고, 세포막의 이온 통로들이 여닫히는 역치도 달라집니다. 같은 성분이 몸에 들어와도 그 자리의 산도에 따라 얼마나 활성을 띠는지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저는 산-염기를 결과가 아니라 조건으로 봅니다. 몸의 화학이 끝나고 남은 값이 아니라, 다음에 벌어질 일을 정하는 값입니다.

진료실에서 제가 먼저 보는 것

아픈 자리를 볼 때 저는 그 자리에 피가 드나들고 있는지를 먼저 봅니다. 산성으로 기우는 흔한 사정이 드나듦이 줄어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들어진 것을 치우지 못하면 그 자리에 쌓입니다.

숨 쉬는 방식도 함께 봅니다. 어깨로만 얕게 쉬고 계신 분이 적지 않습니다. 자세를 고치고 그 자리의 순환을 되살리는 일이, 아픈 곳만 붙들고 있는 것보다 나을 때가 많습니다.

진료가 먼저인 경우

숨이 차면서 의식이 흐려지거나, 갑자기 깊고 가쁜 숨이 이어진다면 산-염기가 실제로 흔들린 상태일 수 있으니 진료가 먼저입니다. 당뇨나 신장 질환이 있으시다면 더 그렇습니다.


별것 아닌데 유난히 아픈 자리를 두고 한 바퀴 돌았습니다.

한의학은 아픈 곳을 볼 때 늘 그 자리의 형편을 물었습니다. 열이 있는지, 눌러 보면 어떤지, 시원한 것과 따뜻한 것 중 어느 쪽에 나아지는지. 통증의 크기만 묻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그 형편에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산도가 있고, 그것을 읽는 문이 신경 끝에 달려 있고, 그 문이 열리면 다른 문이 열리는 역치까지 내려갑니다.

같은 곳을 다른 말로 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 두 말을 겹쳐 놓고 환자분의 자리를 찾습니다.


참고한 자료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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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허지영 대표원장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 서울 광진구 자양동 · 구의역 4번 출구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단독 저서 《몸을 돌려놓는 한약》 · 《검사 밖의 몸》 · 《과학의 눈으로 읽는 한의학》 · 직접 쓴 글 284편

이력 펼쳐보기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병리학(질병의 기전)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같은 대학 본초학 교실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약물을 연구했습니다. 질병과 약물을 양쪽에서 연구한 이력이 진료의 바탕입니다 — "이 약이 왜 이 병에 듣는가"를 병리와 약리 양쪽 언어로 설명합니다.

몸을 다층으로 보고, 환경 변화에 적응해 돌아오는 힘(회복 탄력성)을 살피며, 적응이 안 될 때는 몸 안의 환경 쪽을 손대는 것 — 이 세 관점이 진료의 바탕입니다. 자율신경과 만성·난치질환, 체형·구조의 문제를 현대과학의 언어로 설명하고, 원인에 맞는 치료를 제안합니다. 한의사를 대상으로 처방과 임상 강의를 10년 이상 해 왔으며, 저서 《한의사들이 읽어주는 한의학》 공동 저자입니다. 이 책은 2018년 하반기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되었습니다(기술과학 분야 15종에 포함).

단독 저서로 《과학의 눈으로 읽는 한의학》(2026), 《검사 밖의 몸》(2026), 《몸을 돌려놓는 한약》(2026) 세 권을 썼습니다. 첫 책은 한약이 몸 안에서 어떤 길을 지나는지를 성분과 기전의 이름까지 따라가며 설명했고, 두 번째 책은 검사는 정상이라는데 여전히 불편한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여섯 갈래로 나누어 살폈습니다. 세 번째 책은 그 몸이 어디서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는지를 자율신경, 만성 대사성 질환, 만성 통증, 여성의 몸, 아이와 청소년, 노년기, 낫지 않는 병의 일곱 갈래로 봅니다.

이 글을 쓴 곳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은 서울 광진구 자양동(자양로 46, 오띠모빌딩 2층 201호)에 있습니다. 구의역 4번 출구에서 걸어서 7분입니다. 자율신경·만성통증·난치질환처럼 검사에서 잘 잡히지 않는 불편을 주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