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칼럼 난치질환 클리닉
블로그 2026년 5월 13일

스치기만 해도 아프다면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의료 감수 허지영 대표원장

옷이 스치는 것도 아프다.

이 말을 처음 들으면 대부분 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환자분 스스로도 자기 말을 의심하십니다. "제가 예민한 걸까요."

예민한 것이 아닙니다. 의학에는 이 현상을 가리키는 이름이 있습니다. 이질통(異質痛) — 아프지 않아야 할 자극이 통증으로 느껴지는 상태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매우 실재하는 통증입니다.

왜 안 아파야 할 것이 아픈가

피부에는 여러 종류의 감각 신경이 있습니다. 어떤 신경은 통증을, 어떤 신경은 가벼운 촉감을 전달합니다. 이 신호들은 척수에서 한 번 정리된 뒤 뇌로 올라갑니다.

정상이라면 촉감 신호는 촉감으로, 통증 신호는 통증으로 각각 전달됩니다.

그런데 통증 신호가 오랫동안 계속 올라오면, 척수의 정리 단계에서 문제가 생깁니다. 통증 회로가 과도하게 예민해지면서, 옆의 촉감 신호까지 통증으로 읽어 버립니다.

  • 회로가 넓어져 작은 자극도 크게 전달됩니다
  • 통증과 촉감의 경계가 흐려집니다
  • 다친 곳이 나은 뒤에도 신호만 남습니다

이 상태에서는 진통제가 잘 듣지 않습니다. 진통제는 대개 아픈 자리의 염증을 다스리는데, 문제는 그 자리가 아니라 신호를 읽는 회로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회로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여기서 많은 설명이 멈춥니다. "중추 감작"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신경 안정제를 씁니다.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저는 한 걸음 더 묻습니다. 애초에 그 통증 신호는 왜 계속 올라오고 있었는가.

회로가 예민해지려면, 오랫동안 신호를 보내 준 무언가가 있어야 합니다. 그 원천이 남아 있는 한, 회로만 진정시켜서는 곧 되돌아옵니다.

제가 본 경우

허벅지 앞쪽에 이질통을 겪던 분이 계셨습니다. 손으로 만지기만 해도 심하게 아파 마약성 진통 패치를 붙이고 계셨습니다.

허벅지에는 아무 이상이 없었습니다. 사진도 정상이었습니다.

배를 만져 보았습니다. 아랫배의 압력이 비정상적으로 높았고, 한쪽 사타구니 인대가 유독 팽팽하게 굳어 있었습니다. 허벅지 앞쪽으로 내려가는 신경과 혈관이 지나는 자리였습니다.

눌린 신경은 계속 신호를 보냅니다. 그 신호가 몇 달을 이어지면 척수의 회로는 예민해집니다. 그리고 어느 시점부터 스치는 것조차 통증으로 읽기 시작합니다.

굳은 조직을 힘으로 꺾지 않고 서서히 무르게 푸는 방식으로 그 부위의 긴장을 낮추었습니다. 그러자 허벅지의 통증이 절반 이하로 줄었습니다. 허벅지에는 손도 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두 갈래로 접근합니다

이질통을 다룰 때 저는 두 가지를 동시에 봅니다.

첫째, 신호의 원천을 끊습니다.
신경이 눌린 자리, 압력이 높아진 자리, 굳어서 움직이지 않는 자리를 찾습니다. 대개 아픈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여기를 풀지 않으면 회로는 계속 자극받습니다.

둘째, 예민해진 회로를 되돌립니다.
이것은 시간이 걸립니다. 신경 회로는 강해지듯이 약해질 수도 있지만, 하루아침에는 아닙니다. 지속적인 자극이 필요합니다. 치료실을 떠난 시간에도 작용하는 것 — 여기서 한약이 맡는 역할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프지 않게 움직이는 경험을 회로에 다시 새겨야 합니다.

둘 중 하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원천만 끊으면 회로가 남고, 회로만 달래면 원천이 다시 자극합니다.

시간에 대해 정직하게

이질통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하루아침에 풀리지도 않습니다.

회복은 직선으로 오지 않고,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며 옵니다. 저는 좋아진 날보다 나빠진 날이 얼마나 덜 나빠졌는지를 함께 봅니다. 물결의 바닥이 얕아지고 있다면 방향은 맞습니다.

앞의 환자분도 한 번에 낫지 않았습니다. 절반으로 줄어든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질통에는 여러 원인이 있습니다. 신경이 직접 손상된 경우, 대상포진 뒤에 남는 경우, 당뇨로 신경이 상한 경우, 원인을 끝내 찾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눌린 자리를 찾는 것으로 모든 이질통이 설명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필요하면 신경과 진료나 정밀 검사를 먼저 권해 드립니다. 진통제와 신경 안정제가 필요한 시기도 분명히 있습니다.

다만 "검사는 정상인데 스치기만 해도 아프다"는 말을 들으신 분께, 그것이 예민함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만은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신호는 어디선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그 자리를 함께 찾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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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허지영 대표원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병리학(질병의 기전)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같은 대학 본초학 교실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약물을 연구했습니다. 질병과 약물을 양쪽에서 연구한 이력이 진료의 바탕입니다 — "이 약이 왜 이 병에 듣는가"를 병리와 약리 양쪽 언어로 설명합니다. 자율신경과 만성·난치질환, 체형·구조의 문제를 현대과학의 언어로 설명하고, 원인에 맞는 치료를 제안합니다. 한의사를 대상으로 처방과 임상 강의를 10년 이상 해 왔으며, 저서 《한의사들이 읽어주는 한의학》 공동 저자입니다. 이 책은 2018년 하반기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되었습니다(기술과학 분야 15종에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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