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며 굳어가는 몸, 되돌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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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병으로 오시는 분들께 제가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이제 나이가 있으니 어쩔 수 없는 거겠죠."
저는 그 말에 온전히 동의하지도, 쉽게 부정하지도 않습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분명 몸에서 무언가가 달라지는 일입니다. 다만 그 "무언가"가 정확히 무엇인지 알면, 손댈 수 있는 지점과 손댈 수 없는 지점이 나뉩니다.
노화는 무엇이 달라지는 일인가
세포는 계속 새로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 어느 시점부터 세포가 더 이상 분열하지 않고 늙은 채로 남습니다. 상처를 아물게 하고 조직을 지탱하는 섬유아세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포들은 죽지도 않고, 제 역할을 하지도 않으면서 자리를 차지합니다. 그리고 주변에 염증 신호를 흘립니다. 그 결과가 우리가 몸으로 느끼는 변화입니다.
- 조직이 뻣뻣해지고 잘 늘어나지 않습니다
- 상처와 손상이 더디게 회복됩니다
- 여기저기 은근한 염증이 오래 남습니다
- 한 번 굳은 곳이 잘 풀리지 않습니다
현대 노화 연구가 보는 방향
흥미로운 것은, 현대 노화 연구가 이 문제를 푸는 방향입니다.
한동안은 "몸이 녹스는 것이 노화이니 항산화제를 넣자"는 접근이 유행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기대만큼이 아니었습니다. 좋다는 것을 밖에서 부어 넣는 방식이 잘 통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지금 주목받는 방향은 오히려 반대편에 있습니다.
첫째, 자가포식(autophagy) — 세포가 낡고 망가진 부품을 스스로 분해해 치우는 청소 기능입니다. 이 기능이 살아 있으면 세포는 오래 제 역할을 합니다.
둘째, 호메시스(hormesis) — 약한 자극이 오히려 몸의 조절 능력과 회복력을 끌어올리는 현상입니다.
셋째, 미토콘드리아 — 세포가 에너지를 만드는 곳이자, 노화에서 가장 먼저 흔들리는 곳입니다.
세 가지의 공통점이 보이십니까. 밖에서 채워 넣는 것이 아니라, 몸 안의 기능을 다시 켜는 쪽입니다.
호메시스 — 약한 자극이 몸을 깨운다
호메시스는 처음 들으면 낯설지만,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현상입니다.
운동이 그렇습니다. 근육에 적당한 부담을 주면 근육은 손상되지만, 그 손상이 회복 반응을 불러 더 강해집니다. 부담이 없으면 근육은 자랍니다는커녕 줄어듭니다.
의학에도 같은 예가 있습니다. 부갑상선 호르몬은 원래 뼈를 녹이는 호르몬입니다. 그런데 소량을 간헐적으로 투여하면 오히려 골량이 늘어납니다. 같은 물질이 양과 방식에 따라 정반대로 작동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한약이 몸에 작용하는 방식을 봅니다.
한약은 이 지점에서 만납니다
한약재의 유효 성분은 혈액에 도달하는 농도가 매우 낮습니다. 게다가 상당수는 장내 미생물의 대사를 거쳐야 활성화됩니다.
이 낮은 농도가 오랫동안 한약의 약점처럼 여겨졌습니다. 저는 반대로 봅니다. 몸이 조절할 수 있는 크기의 자극이기 때문에, 몸을 대신하지 않고 몸을 깨우는 쪽으로 작동합니다.
고농도 보충제는 몸에 협상할 여지를 주지 않습니다. 들어온 만큼 작용하고, 들어온 만큼 부담이 됩니다. 반면 낮은 농도의 신호는 몸에게 "지금 여기를 정리해야 한다"고 알려 주는 데 가깝습니다.
노화로 굳어가는 몸에 필요한 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새 부품을 밖에서 넣어 주는 일이 아니라, 청소하고 정리하는 기능을 다시 켜는 일입니다.
그래서 진료실에서 무엇을 하는가
오래된 병으로 오신 분께 저는 이렇게 접근합니다.
- 굳은 곳을 먼저 움직입니다 — 조직이 뻣뻣한 상태로는 순환도 회복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힘으로 꺾어 펴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성질을 무르게 하는 방식으로 접근합니다.
- 염증이 고인 자리를 정리합니다 — 은근한 염증이 오래 남으면 조직은 계속 굳습니다.
- 몸이 스스로 청소하도록 자극합니다 — 한약도, 생활 관리도 이 목적을 향합니다.
- 작은 목표부터 확인합니다 — 잠, 소화, 대변, 아침의 뻣뻣함. 이런 것들이 먼저 움직입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릴 것
노화 자체를 되돌린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런 약은 아직 없습니다. 자가포식이나 호메시스를 한약과 직접 연결하는 연구는 아직 충분히 쌓이지 않았고, 저는 그것을 확립된 사실이 아니라 제가 서 있는 관점으로 말씀드립니다.
다만 굳어가는 속도와 회복하는 힘 사이에는 손댈 수 있는 여지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 여지를 함께 넓혀 가는 것 — 오래된 병을 다루는 제 진료는 거기서 시작합니다.
나이가 있으니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아직 이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