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하면 배가 아픈 사람 — 위는 느려지고 장은 급해집니다
"시험 보기 전에 꼭 배가 아파요."
"발표만 하면 화장실을 찾아요."
이런 분들이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너무 예민한 거 아니야?"
그런데 이야기를 더 들어 보면 이상한 대목이 나옵니다. 속은 체한 것처럼 답답한데, 아래는 급합니다. 앞뒤가 안 맞는 것 같지요.
안 맞는 게 아닙니다. 몸에서 정확히 그렇게 일어납니다.
긴장하면 소화는 뒤로 밀립니다
긴장하면 몸은 급한 일부터 합니다. 심장을 빨리 뛰게 하고, 근육으로 피를 보내고, 눈을 크게 뜹니다.
그럴 때 소화는 급한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뒤로 밀립니다. 위로 가는 피와 신호가 줄고, 위가 움직이는 속도가 느려집니다.
체한 것 같은 느낌이 여기서 나옵니다. 실제로 안 내려가고 있으니까요. 먹은 게 잘못된 게 아니라, 위가 지금 다른 일에 밀린 겁니다.
그런데 대장은 반대로 갑니다
여기가 재미있는 대목입니다.
긴장하면 뇌에서 신호 물질이 나옵니다. 그 신호는 위를 늦추는 쪽으로 갑니다. 그런데 같은 신호가 대장에서는 반대로 작동합니다. 대장의 운동을 오히려 늘립니다.
그래서 이런 조합이 나옵니다.
위는 느려지고, 대장은 급해집니다.
체한 것 같은데 화장실이 급한 이유가 이겁니다. 두 곳이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겁니다. 저는 이 대목을 볼 때마다 몸이 참 정교하다고 느낍니다 — 급할 때 짐을 덜고 뛰라는 뜻이니까요. 원시 시대에는 그게 살아남는 방식이었을 겁니다.
다만 요즘의 긴장은 몇 초로 끝나지 않습니다. 회의는 한 시간이고, 그 회의가 매주 있습니다.
그리고 장은 되돌려 말합니다
한 방향만 있는 게 아닙니다.
장에서 뇌로 올라가는 신경이 뇌에서 장으로 내려가는 것보다 훨씬 많습니다. 장이 불편하면 그 신호가 위로 올라가고, 몸은 그걸 다시 긴장으로 읽습니다. 그러면 장이 또 불편해집니다.
고리가 닫힙니다. 그래서 "긴장해서 배가 아픈 것"이 시간이 지나면 "배가 아파서 긴장하는 것"과 섞여 버립니다. 어느 쪽이 먼저였는지 본인도 모릅니다.
그래서 진료실에서는
위장약만 쓰지 않습니다. 위장이 고장 난 게 아니니까요.
고리 어디를 늦출지를 봅니다. 잠일 때도 있고, 오래된 긴장일 때도 있고, 장 자체가 헐어 있어 신호를 계속 올려 보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면역력은 장에서 결정됩니다)
장을 다스리는 일이 곧 긴장을 다스리는 일이 됩니다. 반대도 마찬가지고요. 고리라서 어느 쪽에서 손을 대도 됩니다. 다만 그 사람에게 어느 쪽이 더 쉬운지는 봐야 합니다.
다만 체중이 빠지거나, 대변에 피가 보이거나, 밤에 아파서 깬다면 순서가 다릅니다. 그때는 검사가 먼저입니다.
긴장하면 배가 아픈 것은 예민해서가 아닙니다.
위와 장이 서로 반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이고, 그건 몸이 잘못된 게 아니라 잘 만들어진 쪽에 가깝습니다. 다만 요즘의 긴장이 너무 길 뿐입니다.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