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칼럼 맞춤 한약 · 보약
블로그 최종 수정

한약 먹을 때 무·녹두를 피하라는 말, 사실일까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의료 감수 허지영 대표원장

"한약 먹을 때 무 먹으면 안 되죠? 녹두도요?"

한의원에 오시는 거의 모든 분이 이 질문을 하십니다. 어디서 들으셨는지 물어보면 대개 "다들 그러던데요"라고 하십니다.

오늘은 이 오래된 금기들을 하나씩 짚어 보려 합니다. 어떤 것은 오늘의 화학으로 이유까지 말할 수 있고, 어떤 것은 아직 설명이 거기까지 닿지 않았습니다.

먼저, 이유를 말할 수 있는 것

이것부터 말씀드리는 게 순서겠습니다. 실제로 조심하시는 편이 좋은 것들입니다.

술.
간은 약을 처리하는 기관이고, 술도 같은 곳에서 처리합니다. 그런데 술이 하는 일은 "부담을 준다"는 한마디보다 조금 얄궂습니다. 한 번에 마시면 약을 분해하는 효소를 붙잡아 두고, 오래 마셔 온 몸에서는 그 효소가 오히려 늘어나 있습니다. 같은 술이 방향을 반대로 흔드는 셈입니다. 여기에 위와 장의 점막을 자극해 흡수까지 흐트러뜨립니다. 한약을 드시는 동안은 줄이시는 편이 좋습니다.

자몽.
의외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자몽은 장(腸)의 벽에서 약을 미리 분해하던 효소를 눌러 버립니다. 몇 시간 만에 절반 가까이 줄고, 그 영향이 하루쯤 이어집니다. 그러면 문 앞에서 걸러지던 약이 그대로 들어와, 예상보다 많이 남습니다. 병원 약에서 잘 알려진 일이고, 한약에도 같은 자리가 있습니다.

카페인.
심장이 두근거리거나 잠을 못 이루시는 분, 자율신경이 예민해진 분께는 커피가 치료를 되돌립니다. 약보다 커피가 더 강한 신호일 때가 많습니다.

차가운 음식과 기름진 음식.
소화기가 약해진 분께는 부담이 됩니다. 흡수가 목표인 치료에서 흡수를 방해하는 것을 드시면 어렵습니다.

무 이야기는 조금 깁니다 — 씨앗과 뿌리가 다릅니다

여기서부터가 이 글의 본론입니다.

"무가 한약 기운을 흩어 버린다." 옛 기록에는 이 말이 분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인삼은 나복자를 꺼린다는 구절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갈라집니다. 옛 기록이 말하는 나복자는 무의 씨앗이고, 선생님이 반찬으로 드시는 무는 뿌리입니다. 같은 식물이지만 약으로 쓰는 부위가 다릅니다.

씨앗 쪽은, 옛말이 맞았습니다.

최근 실험들이 이 조합을 실제로 재현해 봤습니다. 나복자를 인삼과 함께 달이면 인삼 사포닌이 우러나는 양 자체가 줄어들었습니다. 세포 실험에서는 나복자가 진세노사이드를 다시 밖으로 퍼내는 쪽을 늘려 흡수를 떨어뜨렸습니다. 만성 피로 모델에서는 인삼이 기운을 올리는 힘이 약해졌고, 나복자를 많이 넣을수록 더 약해졌습니다.

수백 년 전에 "꺼린다"고 적어 둔 조합이, 사포닌이 우러나는 양과 세포가 약을 퍼내는 속도에서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저는 이런 대목이 재미있습니다.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같은 실험에서 급성 피로에서는 차이가 없었고, 나복자가 오히려 인삼의 열 오르는 부작용을 줄였습니다. 그러니 "나쁜 조합"이라기보다 서로의 방향을 되돌리는 조합에 가깝습니다. 옛사람들이 "꺼린다"고만 적어 둔 자리에, 지금은 조건을 붙여 말할 수 있습니다.

뿌리 쪽은, 아직 모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반찬으로 드시는 무에 그대로 옮기면 안 됩니다. 무 뿌리를 인삼과 함께 먹어서 약이 약해졌다는 자료는 아직 못 봤습니다. 씨앗을 약으로 달인 것과 무국에 든 무는 양도, 부위도, 성분의 농도도 다릅니다.

민간의 금기는 뿌리를 말합니다. 그리고 그 뿌리는 아직 아무도 실험해 보지 않았습니다.

녹두.
"녹두가 약 기운을 푼다"는 말도 흔합니다. 녹두가 해독한다는 오랜 관념에서 왔을 것입니다.

이쪽은 어느 방향으로도 자료를 찾지 못했습니다. 녹두죽 한 그릇이 한약을 무력하게 만든다는 근거도, 그렇지 않다는 근거도 아직 없습니다.

돼지고기.
특정 처방에서 피하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지금의 언어로는 기름진 음식이 소화기에 부담을 준다는 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반찬 무까지 피하게 되었을까

약재 이름과 식재료 이름이 한 낱말로 섞이는 일은 흔합니다. 진료실에서 "나복자를 조심하십시오"라던 말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무를 조심하십시오"가 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기에 두 가지가 더 얹혔을 것입니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입니다. 상하기 쉬운 음식, 탈이 잘 나는 음식을 피하라는 뜻이 함께 실렸을 수 있습니다. 약을 먹는 동안에는 몸을 조심하라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킬 것이 있으면 사람은 그 일을 진지하게 대합니다. 금기는 약을 함부로 대하지 않게 만드는 장치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진료실에서는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무국을 드셨다고 큰일 나지 않습니다. 녹두죽 한 그릇에 치료가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것 때문에 불안해하며 드시는 편이 오히려 해롭습니다.

이유를 말할 수 있는 것 — 술, 자몽, 커피, 그리고 소화에 부담이 되는 것 — 만 지켜 주시면 됩니다. 나머지는 마음 편히 드십시오. 무의 씨앗을 반찬으로 드실 일은 없습니다. 그 배합을 맞추는 일은 제 몫이고, 처방을 지을 때 제가 봅니다.

다만 무언가를 드시고 몸이 달라졌다면, 그것은 꼭 알려 주십시오. 그것이 선생님의 몸에서 나온 관찰이고, 옛 금기도 그렇게 쌓였을 것입니다.

음식보다 먼저 묻는 것

음식 이야기를 오래 했지만, 진료실에서 제가 먼저 묻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지금 드시고 계신 다른 약입니다.

같이 드시는 약에 따라 한약 쪽에서 조정할 것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감초가 든 한약과 이뇨제가 만나면 칼륨이 낮아질 수 있습니다. (약의 효과와 부작용은 같은 자리에서 나옵니다) 이런 것은 미리 알면 피해 갈 수 있고, 모르면 피해 갈 수 없습니다.

무를 물어보시는 만큼만, 드시는 약도 알려 주시면 됩니다.


무 이야기를 길게 한 이유가 있습니다. "옛말이라 근거가 없다"와 "옛말이니 그냥 지켜라" 사이에, 실제로는 훨씬 재미있는 자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수백 년 전에 꺼린다고 적어 둔 조합이 사포닌이 우러나는 양에서 드러났고, 동시에 그 이야기가 반찬 무까지는 아직 닿지 않았다 — 둘 다 참입니다.

닿은 것은 이유를 붙여 지켜 드리고, 닿지 않은 것은 닿지 않은 대로 둡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중 몇은 또 이름이 붙을 것입니다.

그때까지 필요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드시는 것을 말씀해 주시는 일. 그리고 몸이 달라지면 알려 주시는 일.

참고한 자료


글: 허지영 원장 (경희대학교 한의학 병리학 박사 · 前 경희대 본초학 학술연구교수)

고민되는 증상이 있으신가요?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에서 1:1 맞춤 상담을 받아보세요.

경희미르애한의원 광진점 대표원장 허지영 프로필 사진

허지영 대표원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병리학(질병의 기전)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이후 같은 대학 본초학 교실에서 학술연구교수로 약물을 연구했습니다. 질병과 약물을 양쪽에서 연구한 이력이 진료의 바탕입니다 — "이 약이 왜 이 병에 듣는가"를 병리와 약리 양쪽 언어로 설명합니다. 자율신경과 만성·난치질환, 체형·구조의 문제를 현대과학의 언어로 설명하고, 원인에 맞는 치료를 제안합니다. 한의사를 대상으로 처방과 임상 강의를 10년 이상 해 왔으며, 저서 《한의사들이 읽어주는 한의학》 공동 저자입니다. 이 책은 2018년 하반기 세종도서 교양부문에 선정되었습니다(기술과학 분야 15종에 포함).

의료진 소개 더보기 →
/* v1.35.6 cache-bust 1775272025 */